출처: http://cafe.naver.com/dirdyd/24265
초공간과 식
지금까지 나는 의식과 사후식(死後識)의 존재와 그 작용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 다소 성급한 면이 있었다. 그것은 사후식과 살아 있는 의식의 상호작용 측면에서였다.
의식과 사후식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의 공간-장소는 어디일까? 우리의 인식체계에 의하면 존재는 존재의 터전을--그 장소를 필요로 한다. 보통 우리가 `어디 있는가?'하는 질문을 할 때에 그 대상은 형체를 가진 것--그래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위치를 말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무형(無形)인 것 같다. 만약 의식이 그 공간을 필요로 한다면 우리 머리 속에는 의식을 위한 구멍이 뻥 뚫려 있어야 하지만, 그런 구멍은 없다. 누구나 살아 있는 의식은 우리의 머리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뇌 세포 속에는 물과 단백질과 핵산, 지질 그리고 다당류뿐이다. 이 점은 의식이 물질(두뇌)과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뇌 신경세포들의 전기-화학적 작용이라는 기능주의 또는 부현상론자들의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의식의 터전을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의식을 폐기 처분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은 x, y, z 세 개의 좌표축으로 대표되는 3차원이다. 모든 경험과 과학적 사실에 비추어 이것은 확실해 보인다. 만약 우리 공간이 4차원이라면 우선 중력의 작용이 달라지게 되어서 달은 지구를,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안정된 궤도를 돌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3차원 공간이라는 전제하에 뉴턴의 중력의 법칙은 지구와 달의 궤도를 정확하게 계산해 낼 수 있으며 그 계산 결과는 실제 관측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공간이 4차원이라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은 19 세기부터 많은 사람들의 상상을 자아낸 주제이다. 특히 지금 이 단원의 목적과 같이 귀신, 유령 또는 영혼의 존재 터전으로서의 4차원을 상상했던 사람들은 매우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 `상상'에 그쳤던 <고차원 공간>은 있는 것일까?
뉴턴이, 그리고 아인슈타인 이전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였던 공간은 절대적인 공간이었다. 아인슈타인이 공간은 시간과 물질과 함께 서로 변하는 상대적인 것이며, 특히 시간은 공간의 3 개의 차원과 합해져서 4차원 시공간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 더 나아가서 시공간은 중력장 그 자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의 놀라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찬사와 함께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던 것이다. (공간은 3 차원이요 시공간은 4차원이다. 공간의 3개 차원에 시간 1개 차원이 더해진 것이다. SF 등에 나오는 `4차원 공간'은 시공간으로 말하면 5차원 시공간이 되는 것이다).
물질은 그 중력으로 시간을 느리게 하며, 공간을 휘어지게 한다.
`휘어진 공간'? `휘어짐'은 더 높은 차원을 필요로 한다. 적어도 우리의 인식체계 내에서는 그러하다. 2차원인 종이를 휘어지게 하려면 3차원이 필요하다(수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4차원 시공간이 휘어진다면 4차원의 배경에 5차원 이상의 시공간이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상대성 이론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던 <리만 기하학>의 창시자인 리만의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다' 라는 말에 의지하여 물리학에서 초공간의 가능성을 찾아보자.
양자역학이 아직까지 골치를 싸매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가 전자의 크기이다. 어떤 물리 책을 보아도 전자의 질량과 전하의 크기는 그 수치가 표시되어 있지만, 크기가 얼마라고는 나오지 않는다. 전자는 크기가 없는 `점 입자'로 취급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점'이라는 것은 기하학의 공리로서 `비현실적인 가상의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크기가 없는 물체'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무언가 비정상적이다. 그래서 다시 문제가 생기게 된다. 크기가 없는 한 점에 전하가 집중되어 있으므로, 그 자체의 전기장에 의한 자기(自己)에너지를 이론적으로 계산해 보면 무한대의 값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실험으로 그 값을 측정해 보면 일정한 값으로 측정된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재규격화 renormalization>이론이 만들어졌고 그에 의해서 이론적 계산치와 실측치를 일치시킬 수 있었지만, 그 방법은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실은 이 방법은 실측치에 이론을 끼워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자의 존재를 예측하여 일본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유가와 히데키 등이 주장한 <비국소장 이론, 소영역 이론>에서는 소립자를 `시공간적으로 확장'시킨다. 전자는 4차원 시공간적으로는 크기가 없는 점이지만 5차원 또는 그 이상의 고차원 방향으로 크기를 가진다(확산)고 가정하면 자기에너지의 발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이 이론들은 우리의 시공간에 대한 기존 개념(4차원 시공간)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검토해 볼 수도 있다. 전자는 그 크기가 없지만 질량과 전하 등의 여러 성질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존재에 있어서 그것이 필요로 하는 장소(공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물질(존재)에 대한 인식체계에 있어서 존재하는 것은 그 장소를 필요로 한다. 전자의 경우 그 장소는 아무리 해도 4차원 시공간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전자의 <공간>은 4차원 시공간을 넘어 선 초공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전자기력 등 전자의 모든 작용은 3차원 공간(4차원 시공간)적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시 소립자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소립자의 물리량--즉 물리적 성질은 질량(에너지), 운동량, 각운동량, 스핀, 중(경)입자수, 전하와 하전스핀, 하이퍼차지(huper-charge;초전하)가 있다. 이 중에서 중(경)입자수, 하전스핀, 하이퍼차지는 외부 시공간과 관계없는 소립자의 내부적 성질이며, 질량(에너지), 운동량, 각운동량은 4차원 시공간과 직접 관련되는 성질이다.
<스핀 spin>은 매우 특수한 것이다. 'spin(회전)'이란 말 그대로 일종의 각운동량이라 할 수 있는 양인데, 소립자에 따라서 1/2의 배수 스핀을 가지는 것과 정수 스핀을 가지는 것이 있다. 전자 등의 1/2의 배수 스핀을 가지는 것은 <2 바퀴를 돌아야 원래 방향으로 돌아온다>. 전자에게는 일회전이 360도가 아니라 720도인 것이다. 수치로만 비교한다면 전자는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보다 2배의 공간을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회전'하는 물체라면 그 회전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스핀의 회전축은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의 방향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조금 전, 전자의 크기 문제로 고차원을 필요로 하는 <비국소장 이론>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전자가 `보는' 시공간은 우리가 `보는' 시공간과 다른 것이다. 이래서는 전자에게 4차원 시공간을 강요`할 수 없다. 아무래도 우리가 전자보다 못한 우리의 공간지각 능력을 한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경험으로는 공간과 시간은 서로 별 개의 것으로 인식되지만, 시간은 우리가 있는 4차원 시공간의 한 축(방향, 차원)일 뿐이다. 다만 시간은 공간과 달리 방향성이 있어서 우리는 공간에서 뒤로 돌아 갈 수는 있지만 시간에서 과거로 돌아 갈 수는 없다. 실은 상대성이론은 시간의 방향성을 정하여 주지 않는다.
열역학 부분에서 말씀 드렸듯이 물리학의 기초 이론에서는 시간의 방향성을 정해주는 <비가역성>을 찾아 볼 수 없다. 상대성 이론에서는 마치 공간이 상하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것처럼 시간도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전개되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미래는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 사실도 결정론의 한 근거로 쓰인다. 과학자들은 `미래가 이미 존재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알 수가 없으므로 조금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라고 안심시키지만, 느낌이 야릇한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앞에서 '소립자가 그 의지를 실현시키려는 기가 인과율을 만들고, 인과율이 비가역성을 만들며, 비가역성이 (복잡계의)자기조직화 효과를 창출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시간의 방향성이 정해진다' 라는 생각을 말씀 드렸다. 상대성 이론의 가장 기본 조건은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인데, 그 조건의 배경에는 다시 <인과율>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상대성이론은 인과율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물질(질량)과 공간과 시간이 서로 상대적으로 변화한다는 이론이다. 소립자가 이미 인과율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상대성이론이 표시하는 `이미 거기에 있는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미래'가 아니라, `미래의 시간은 이미 거기에 있지만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의 탄생은 `진공의 양자역학적 요동에서 생겼다'라는 것이 현재 가장 널리 인정되고 있는 이론이다. `진공의 양자요동'은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여 극히 짧은 시간 동안이라면 매우 큰 에너지의 입자도 저절로 생겨날 수 있는 현상을 말한다. 이렇게 생겨난 작은--물리학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플랑크의 크기인 10의 마이너스 33승 센티미터--입자우주가 생겨날 때의 마이너스 압력으로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게 되고(인플레이션), 팽창에 의한 상전이(相轉移)로 진공의 에너지가 풀려 나와서 물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우주--4 차원 시공간--이 생겨날 수 있었던 그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몇 차원 시공간일까? 물론 이런 생각은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의 '도미마쓰-사토' 풀이로 유명한 일본의 사토 후미타카(佐藤 文隆)는 이렇게 말한다;
'시공을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만들면 되는가? 이 문제는 최근 연구되고 있는 초끈 이론과 얽힌다. 그러나 아직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일반적으로는 시공적이 아닌 것의 특수한 형태로서의 시공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우리는 언제나 특수한 것을 먼저 보게 되고 그것이 일반적인 것처럼 속아 왔다, 그보다 스스로 속여 왔다.' ('양자우주를 엿보다. 전파과학사 역간)
우리의 우주는 시공간 4차원이라는 `특수한 것'이며, 그 배경에는 보다 ‘더 일반적인 시공간이 있다'라는 생각이다. ’더 일반적‘이라는 말은 ’더 큰 차원‘이라는 이야기다. 한스 페이겔스는 이 배경이 되는 ’모(母)시공간‘이 “다차원(多次元)”이라는 이론을, 그리고 알렉산더 비렝킨(1949 ~)은 “무한차원”이라는 이론을 발표하였다. 현재 우주론, 특히 우주의 탄생에 관한 이론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고 있는 이론이 비렝킨의 이론이다.
진공은 텅 빈 `장소'가 아니라, 그 속에서는 수많은 입자들이 순간적인 쌍생성-소멸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 입자들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그것들은 다른 차원과 우리 차원을 드나들고 있는 것이라 보아야 하지 않을까?
불확정성 원리는 기존의 소립자들만 생겼다가 사라지도록 `허가'한다는 제한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생성-소멸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질량이 전자의 백 배쯤 되고 정수 스핀을 가진 전자라든지 등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무엇이든지 생성-소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금지되지 않은 모든 것은 필수적이다' -- 쿼크 이론의 창시자인 머레이 겔만 Murray Gell Mann 의 말이다. 그런데도 생성-소멸하는 것은 우리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입자들뿐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임의의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라는 범주에 들지 않는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지금 이 장의 내용처럼 그 `존재의 터전'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다른 차원 말이다.
현재 물리학계에서 관심과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초끈 이론 Super-string theory' 에 의하면 우리의 시공간은 4차원이 아니라 10차원이다. 그러면 우리가 인식할 수 있으며, 중력장 등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4차원 이외에 나머지 6차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플랑크의 크기 이하로 `자그마하게 돌돌 말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초끈 이론이란 플랑크의 크기 만한 끈의 진동 상태에 따라서 모든 소립자가 만들어진다는 이론인데, 아인슈타인 이후 모든 물리학자들의 꿈이요 소원인 '대통일 이론'의 강력한 후보이다. 다른 이론들은 전자기력과 약력, 강력의 세 가지 힘은 하나로 통일할 수 있으나 중력을 통일시킬 수가 없다. 그러나 초끈 이론에 의하면(시공간의 차원을 높이면) 중력이 `저절로' 통합된다. 초끈 이론은 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일 뿐 아직까지 완성된 이론은 아니다. 그 이론에 사용되는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21 세기에나 완성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물리학은 '차원의 벽'에 부딪쳐 있는 것이다. 초끈 이론은 그 수학이 너무 어렵고, 미완의 이론이라서 물리학자들 사이에도 이론(異論)이 분분하며, 엉터리라고 반대에 열을 올리는 학자도 있다. 그래서 나도 더 세부적인 내용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없지만, 내가 이해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 차원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
[초끈 이론은 10차원(공간 9, 시간 1차원)의 이론인데, 우리가 존재하고 인식하는 시공간은 4차원이다. 10차원에서는 입자들의 질량도 없으며 물리적인 상호작용(힘)들은 동일하다. 즉 대통일 이론의 목표인 `힘의 통일'이 이루어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 10차원의 초공간이 `붕괴(물리학 용어로는 공간 대칭성의 파괴)'되어 4차원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힘이 분리되어 나온다. 먼저 중력, 다음 강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자기력과 약력이 분리되어 네 개의 힘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차원이 `붕괴'되는 과정은 '인플레이션 우주론 Inflation Universe'에서 우주(시공간)의 온도의 변화를 통해서 파악된다]
우주의 탄생 시점(10차원 또는 그 부근)에서는 플랑크의 온도(고온의 극한)인 10의 32승K, 온도가 이보다 낮아지면 중력이 갈라져 나오고, 10의 28승K에서는 강력이, 10의 16승K에서 전자기력과 약력이 갈라져 나오는 것이다.
나는 물리학자가 아니므로 위의 내용은 틀린 것일 지도 모른다. 초끈 이론에서 말하는 '6 개의 추가 공간이 간략화(플랑크의 크기로 축소) 되는 과정에서 네 개의 힘이 갈라져 나온다'라는 사실과, Inflation 이론에서 초기 우주의 팽창에 의한 온도 저하에 따라 네 개의 힘이 갈라져 나온다는 것을 결합시킨 것이다. 나는 6 개의 `잉여 차원'이 `붕괴한다'라기보다는, 고온에서 10차원적이던 통일력이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서 4차원적인 네 개의 힘으로 갈라진 것이므로, 그 과정의 배경인 10차원 시공간은 붕괴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의 우주는 여전히 10차원`적'인데 물질과 물리적 힘들이 4차원적이므로, `물리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물질을 포함한)의 인식체계에는 10차원 시공간이 4차원인 것으로 인식된다는 생각이다. 즉 우리는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과 힘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열 개의 차원 중에서 네 개의 차원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 서 말씀드린 바, 시공간이 5차원이라면 중력의 작용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여기에 모순되지 않는다. 따라서 굳이 잉여 6 개 차원을 축소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 편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담이요 상상이지만, 초끈 이론의 문제는 온도의 저하에 따라 6 개의 `잉여' 차원--에드워드 위튼에 의하면 이것은 굳이 공간적 차원일 필요는 없으며, 수학적으로는 6 개의 변수로 나타난다--이 차례로 영(零)이 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물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들--질량(에너지)과 운동량은 4차원 시공간 적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시간과, 운동량은 공간의 성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시간이 일정하게 흐르지 않는다면 에너지 보존법칙은 성립할 수 없으며, 우리는 꿈에 그리던 영구기관을 만들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소립자들은 분명히 더 고차원 시공간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공간은 초끈 이론이 가르쳐 주고 있듯이 10차원이며, 다만 우리가 `물질적인 한계의 제약을 받고 있는 존재'이어서 4차원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가정 하에서라면 중력 등 물리적 힘이 4차원적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으며, 우리의 시공이 4차원이라야만 한다는 제한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우리의 우주(시공간)가 4차원이 아니라 ‘고차원이어야 한다는’ - 적어도 그래야 더 합리적이라는 이론은 이미 1920년대에 칼루자(Theodr Kaluza)-클라인(Oscar Klein)에 의해서 발표되었던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가지의 상호작용(힘)들 중에서 중력과 전자기력은 시공간을 <5차원>이라 가정하면 즉시 - 지극히 간단하게 하나의 힘(식)으로 통합 표시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여생을 바쳐서 하나로 통합해 보려고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지금까지도 모든 물리학자들의 꿈이요 소원인 중력과 전자기력의 통합이 5차원 시공간에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쉽사리 해결되는 것이다.
칼루자-클라인의 이론은 “5차원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는 현재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에 이어져 있다.
우리가 인식하는 4차원 시공간 위의 고차원공간을 <초공간>이라 하자. 그렇다면 의식이 자리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다. 2차원이 1차원을 포함하며, 3차원 공간이 2차원을 포함할 수 있듯이 당연히 초공간은 우리의 4차원 시공간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의식이 초공간에 있는 것이라면 굳이 우리 머리 속에 동굴을 파고 있어야할 필요가 없다. 그저 우리 머리가 있는 4차원 시공간과 겹쳐 있는 초공간 내의 해당 위치에 같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함으로서 육체와 독립적인 의식의 장소 문제가 해결 가능하며, 역으로 이 가정을 입증해 주는 현상이 기의 전달이다. 소립자의 <초광속 정보전달>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차원 시공간을 도입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텔레파시는 실험 결과 거리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레닌그라드 대학의 생리학자인 레오니드 바실리예프 Lednid Vasiliev의 실험에 의해서 밝혀졌다(또한 그 실험에서 텔레파시는 전자기파가 아니라는 것도 밝혀졌다). 4차원 시공간에서의 거리는 초공간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이퍼 스페이스(hyper-space; 초공간), 웜홀을 이용한 우주여행 SF들이 이런 원리를 채용한 것이다.
초공간은 우리의 시공간과 별도로 있는 공간이 아니다. 2차원이 우리 3차원 공간 속에 함께 있듯이, 우리 4차원 시공간은 초공간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4차원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직까지 이론적으로 증명되지 아니한 나의 생각일 뿐이다.
의식뿐만 아니라 사후식과 우주식이 의식 또는 물질과 기를 주고받는(작용하는) 일도 이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사후식은 우리의 의식과 같은 차원에`도' 있으며, 우리의 의식, 그리고 육체와도 언제나 즉각적으로 기의 교감이 가능하다. 사후에 의식은 요단강을 건너서 머나먼 황천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초공간 거리 상으로 제로인 곳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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