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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상과 노자와 장자

by 靑野(청야) 2014. 11. 4.
선사상과 노자와 장자

 

출처: http://sblueflow.tistory.com/176

 

선사상과 노자, 장자사상과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이 두 사상 간의 연관성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루지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또한 이 두사상의 관계에 대해 논한 글이나 책을 접하기고 쉽지 않다. 먼저 이런 분야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에 감산덕청의 노자도덕경주 번역서가 나와서 이 두 사상간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고 있다. 선과 노장 간의 비교철학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서 우선 이와 관현한 문헌의 한글번역이 나와야 하는 데 마침 이 분야의 대표적인 문헌이 번역되어 나온 것이다.

 

감산덕청은 명나라 때 최고의 학승이자 선승으로서 불교에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도가사상에도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대립하기만 했던 중국의 유, 불, 도 사상이 명나라 때에 와서 화합하기 시작하였다. 정확하게는 송나라 말기부터 이지만 감산덕청이 활약하던 명대에 와서는 그 화해 무드가 무르익었고 감산덕청 자신이 바로 이러한 분위기를 주도한 학승이었던 것이다. 그는 유가사상 가운데 하나인중용에도 주석을 달아놓았고, 도가의 대표 문헌인 노자와 장자에도 주석을 했는데 그 책이 바로 "노자도덕경해"와 "장자내편주"이다.

 

노자주석서에 대한 번역서가 바로 최근에 정우서적출판사에서 나온 "노자도덕경, 그 선의 향기(2010. 12)"이다. 역주자 자신이 이 분야로 철학박사논문을 쓴 사람으로서 연구번역의 형식으로 책을 내놓아 이 분야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장자내편주"는 제목대로 내편에만 주석을 단 책이다. 장자는 내편, 외편, 잡편, 이렇게 세 부분으로편집되어 있는데 감산은 내편에만 주를 달았기 때문에 이 책의 이름이 이렇게 된 것이다. 이 책에 대한 한글번역이 또한 빨리 나와야 할 것이다.

 

비교철학에 대해 어떤 이는 부정적으로생각하기도 하지만 이 두분야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도 두 분야에 대한 비교분석은 필수이다. 두 분야에 대한 비교 분석을 통해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은 각각의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비교철학은 결코 어설픈 놀이가 아니다. 비교철학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더라도 수단으로서라도 꼭 필요한 작업인 것이다.

 

감산덕청이 시대적인 요청으로 이러한 작업을 했지만, 이는 사상들 간에 서로 오해를 함으로써 상대의 사상을 왜곡하게 만들었던 과거의 업을 깨끗이 씻는 역할을 했다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작업을 통해 왜곡되었던 도가사상을 바로 잡기도 하고 도가사상의 진면목을 새롭게 드러내기도 하는 성과를 낸 감산의 과업은 묻힐 수 없는 것이다.

 

감산덕청의 작품은 20권 전집[감산대사법휘초집, 이집]으로 나와 있는데 화엄경, 법화경, 원각경, 능업경, 기신론, 조론, 금강경등 불교문헌에 대한 주석서들이다. 이 방대한 주석서를 남긴 스님의 업적 가운데 하나가 노자와 장자에 대해 주석한, 위에서 말한 두 권의 책이다. 노자주석서 한글번역 책이 현재 나와 있고 이제 장자내편주에 대한 한글번역서가 나와야 할 차례다. 장자는 X54428;씬 선사상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접목할 수 있는 문헌이다.

 

다 알지만 중국의 선사상은 인도의 불교가 장자와의 만남으로 나온 사상이다. 장자의 영향이 없으면 불교는 선사상으로 거듭날 수가 없었다. 불교사상의 꽃은 선사상이다. 그 선사상의 탄생에 대한 장자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56가7종 가운데 임제종의 경우는 99% 장자사상이다. 마조도일의 평상심으로 시작하여 임제의현으로 흐르는 줄기는 정확하게 장자이다. 장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얘기가 잘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우리나라에 장자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그러면 장자가 곧 선사상인가? 물론 아니다. 장자의 위대한 점이 이것이다. 장자는 선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있으면서도 이 깨달음을 정치에 적용한다는 점이다. 선불교는, 사실 선은 불교가 아니다, 정치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자는 선이 말하려는 깨달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불교가 속세라고 치부하는 정치세계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자는 선적인 깨달음을 가지고 추저분한 세계라 할 수 있는 정치, 그 진흙탕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여기서 불교의 해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즉 불교의 목표가 해탈인가? 아니면 해탈은 수단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의 목표가 해탈인가, 해탈의 목적이 X49339;인가? 대답하기 어렵다.

 

인간의 삶에만 분명 정치 사회를 무시할 수 없다.해탈은 사회로부터의 해탈이기도 하다. 깨달음은 반드시 홀로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은 다음에도 우리는 역시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한다. 중도를 지키려 해도 속세를 무조건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속세에는 그 더러운 정치세계가 들어있다. 아니 정치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

 

중들이 절에 모여 살아도 그 절은 중들의 '사회'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도 정치적인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어떠한 형태의 사회, 정치냐이X44612;지만. 임제종의 차안과 피안의 일치는 우리로 하여금 정치를 피할 수 없게 만듬에도 불구하고 선종은 정치에 관심을 안 둔다는 것이 문제다. 사회에 사는 중생의 구제를 위해서 보살행을 강조하면서도 정치싸움에는 끼어들지 않으려 한다. 지들만 고고하게 피안에 있다. 우리는 해탈을 해도 이 지구위에서 하는 것이고 윤회를 해도 이 지구 위에서 하는 것이다. 생명체가 멸종하지 않는 한 지구는 우리는 집이다. 이 지구를 지키는 것이 보살행이다. 사대강사업한다고 강산을 짖뭉개는 짓을 해도 선종은 가만히 있을 것인가? 물론 한국불교에서 분명히 반대표명을 했다. 그러나 소극적이다.

 

장자가 보기에 소극적이다. 적극적일려면 중도 국회의윈이 되어야 한다.목사, 장로가 국회에 나가고 대통령이 되듯이 중이 대통령, 장관한다고 이상할 게 무엇이냐. 제대로부처세계, 불국토를차안에 세우려 한다면 중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하다못해 생태계 문제 하나 해결하려해도 참여해야 한다.

 

나는 장자의 위대성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장자는 그 위대한 깨달음을 적극적으로 정치철학에 응용하여 풀어낸다는 것이다. "내성외왕" 이는 장자의 사상으로, 노자로부터 이어받은, 깨달음은 선사상 수준이면서도 그 깨달음을정치, 사회사상으로 응용하여 플라톤의철인정치 같은 사상으로 풀어낸 것이다.

 

감산덕청도 장자를 주석하면서 내성외왕 사상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차안 속에 피안을 실현할 것을 주장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X46461;에 이루어지기를 예수가 기도했듯이.

 

감산덕청의 "장자내편주"를 읽으면 이러한 장자의 모습을 실감할 수 있다. 선사상만이 아니라 선적인 깨달음을 어떻게 정치철하게 응용하여 풀어내는지를 알 수 있다. 노장만 하는 사람은 선사상을 모르고 선사상하는 사람은 장자를 모르는데, 그래서 한계가 있는데 감산의 책을 통해서 이 양자가 잘 혼융되어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장자내편주 에 대한 번역서가 현재 나와 있다. 하나는 오진탁이 번역한 '감산의 장자풀이' 인데 보지 말라. 번역 개판이다. 한문 원문과 함께 보면 알게 된다. 번역서만 보면 모른다. 감산의 이 위대한 주석서를 이따위로 번역해서 그 빛남을 죽여버렸다. 철학 전문출판사, 서광사에서 이런 개같은 번역서을 내다니. 이미 20년이나 되었지만 하여튼 노자도, 장자도 번역이 개판이다. 또 하나는 송찬우의 '장자선해'인데 번역이 너무 번거롭고 잡다하다. 용어의 통일성, 철학개념의 세밀함이 부족하다.

 

하루 빨리 새로운 번역서가 나와야 한다.

 

선사상과 노자,장자와의 비교철학적인 연구는 백지 수표다. 무한한 깨달음이 이 수표위에 숫자로 새겨질 것이다.

 

21세기는 선사상과 노장사상의 세기가 될 것이다. 아니 되어야 한다. 아니면 이 지구에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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