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토착세력과의 유착 폐단 전관예우와 맞물리면 더 심각
향판들 재판 태도도 매우 불량… 피해는 그대로 국민에 돌아가
지방 근무 원하는 법관 지망자 넘쳐 제도 도입 명분도 사라져
출처: 조선일보 2013. 2. 25 (월)
- 하창우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최근 광주지법 순천지원이 1000억원대 교비를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재판받고 있는 대학 설립자를 보석으로 석방했다. 2010년 광주지법의 파산부 수석부장판사가 법정관리기업 감사에 자신의 중고교와 대학 동창인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알선하여 지난달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들에 관여한 판사는 이른바 '향판(鄕判)'이다.
향판 제도는 법관이 서울과 지방을 오가지 않고 한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배려하기 위해 수십 년 전부터 시행해온 인사 관행이었다. 그러다 2004년에 대법원이 대다수 판사가 수도권 법원 근무를 선호하여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도권 법관 정원의 절대적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 근무를 원하는 판사들을 지방에만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지역법관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재야 법조계는 처음부터 이 제도가 가져올 병폐를 우려했다. 대부분 연고지에 지원해 퇴임 때까지 근무하는 향판과 지방 토착 세력의 유착을 경계했기 때문이었다. 향판 사건으로 논란되는 대부분은 이런 힘 있는 지역 인사와 연관된 사건이다. 1000억원대 횡령사건의 구속 피고인을 보석으로 석방하는 결정은 일반적 기준을 벗어난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향판 제도가 있는 법원의 보석 허가 비율이 이 제도가 없는 법원보다 평균 10%포인트 정도 높다거나 2심에서 1심의 형량보다 감형하는 비율이 일반 사건의 2.5배나 된다는 조사 결과는 향판 제도가 얼마나 공정하지 못한지를 통계적으로 보여준다. 향판의 비율이 전체 법관의 10%를 상회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제도로 인해 피해를 입는 국민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향판 제도가 전관예우와 맞물리면 폐해는 더욱 심각해진다. 향판이 퇴임하여 변호사 개업을 하면 향판 출신 변호사가 된다. 이런 변호사와 인맥을 형성한 향판이 '봐주기 재판'을 하면 심판의 공정성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일부 향판들의 재판 태도도 문제다. 향판은 고등법원 관내에서만 인사 이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른 법원으로 이동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온다. 이 때문에 사건 당사자와 변호사 위에 군림하며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재판을 하기 쉽다. 지방 변호사들의 향판에 대한 고충이 수도권 변호사보다 심하다는 변호사회의 법관 평가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법조인의 대량 공급 정책에 따라 지방이라도 근무하겠다는 법관 지망자가 넘쳐나고 있다. 지방법원 근무 기피는 이제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지역법관제의 도입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판사들은 전국 어느 법원에서나 유사 사건의 판결을 쉽게 검색해 재판에 이용한다. 굳이 법관을 한 지역의 법원에 오래 머물게 할 이유가 없다.
시대가 바뀌어 향판을 도입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면 지역 인사들과의 유착이 계속 불거지는 이 제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법관의 윤리 기준 강화만으로 향판 제도의 폐단을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대법원은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선 향판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법부가 재판의 공정성이 우려되는 인사제도를 계속 붙들고 있어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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