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법정스님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소개한 책,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했나?
무수한 철학자나 성인처럼 통찰이 있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고 들었던 바를 담대하게 써내려 간다. 어떤 결론을 내주기 보다 자신의 일기를 쓴다.
<살아가는 모든 것과의 관계> 1983. 2. 25.
1. 우리가 나무와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곧 인류가 관계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지구 상에 살아 있는 그 어떤 것과도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미 형성된 인류와의 관계를 모두 잃게 된다.
2. 우리는 서로 죽이는 것을 사랑한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인간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서로를 죽여왔다.
3. 살아 있는 나무와 덤불, 꽃, 잔디,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 등의 자연과 깊고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아니 반드시 형성한다면, 우리는 다시는 어떤 이유로도 서로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멈춤의 어려움> 1983. 2. 28.
1. 마치 마음이 단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움직이도록, 어떤 것에서 다른 것으로, 지식에서 지식으로, 행동에서 행동으로 이동하기를 생각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 생각의 사슬에 꽁꽁묶여서 나도 내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욕망과 욕구 해소를 위해 무수히 반복되는 생활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허무함은 느낀다. 내 탓이 아닌 누군가의 탓인 것처럼...
2. 마음은 왜 늘 사용되기를 요구하는 것입니까?
<정체성과 허상> 1983. 3. 10.
1. 그러고는 다시 고요함과 함께 깊은 고독감이 밀려왔다. 고개를 들어 산꼭대기를 향해 높이 난 길을 바라보니 그 옆으로 계곡물이 잔잔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2. 헛되고 자만심으로 가득 찬 인간의 품위와는 차원이 다른, 아름답고 위엄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명상> 1983. 3. 11.
1. 발밑 저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에 모든 것을 두고 왔다. 나 자신의 정체성과 소유물, 경험, 소중했던 것들에 대한 기억, 이 모든 것을 저 밑에서 반짝이는 밭과 과수원에 모두 내려놓고 왔다.
2. 여기에는 오로지 온전한 침묵만이 흐른다. 이곳에서 나는 완벽하게 혼자다.
3. 진정한 의미의 명상을 이해하려면 단어 자체를 잊어버려야 한다. 잴 수 없는 어떤 것을 단어 하나로 재거나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손님이다> 1983. 3. 11.
1. 궁핍함의 진정한 의미는 수도승이나 고행자, 은둔자 때문에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다.
2. 밤이 깊어져서야 온전한 침묵이 드리울 것이다. 천국의 뿌리에는 굉장한 공허함이 있다. 이 공허함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엄청난 에너지가 존재한다.
<삶과 죽음 1> 1983. 3. 15.
1. 우리는 자아라는 개념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해왔습니다.
2. 모두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비슷한 점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3. 당신의 정신이 인류의 깊숙한 일부분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일 뿐 결론 짓거나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반응은 인류의 반응과 다르지 않습니다. 수많은 세월을 거치며 진화해온 당신의 뇌는 비단 당신의 뇌가 아닙니다.
4. 우리는 곧 인류 전체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일부분입니다. 낭만적이거나 환상적인 말이 아니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고 중요한 점입니다.
5. 우리는 행동과 반응을 결정하는 의식과 생각, 개념, 패턴, 믿음, 사상, 두려움, 기쁨 그리고 신앙을 모두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찬양, 슬픔, 절망과 고통까지 모두 말입니다.
6. 우리의 의식은 당신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의식은 많고 많은 세월을 지나 진화하고 성장하며 축적된 것이지요. ---- 물질주의자·유물론자의 시각, 거대한 인류의 진화에 대한 담론, 누구나 비슷한 생각과 도덕적 헤게모니를 가졌기 때문에 즉, 사회적 진화이므로 인류는 같은 공동체...
7. 우리의 의식이 계속되는 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두려움과 국적, 성공에 대한 충동이 있는 한 우리는 인류의 한 부분이며 인류의 움직임의 한 부분입니다.
8. 개개인의 생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인류가 생각을 공유합니다. 이것의 의미를 이해했을 때 죽음의 진정한 뜻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과 죽음2> 1983. 3. 16.
1. '과연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2. 우리는 왜 삶으로부터 죽음을 분리해온 것일까요? 죽음은 인간 삶의 일부고, 우리 존재의 일부입니다. 결코 떼어내거나 갈라낼 수 없습니다. 질투, 분노, 슬픔, 외로움, 기쁨 등은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모든 것과 죽음을 왜 구분해야 하는 것일까요?
3. 삶과 죽음이 반복되면서 생겨난 생각과 시간이 분열과 분리를 만들었습니다.
4. 당신과 다른 사람들의 죽음은 인간의 행동과 반응, 의식과 태도의 흐름의 발로입니다. 당신이 곧 이것들이 흐르는 냇물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인간의 마음은 오랫동안 이 냇물의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5. 그래서 욕심, 질투, 두려움, 기쁨, 행복과 다른 모든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한 우리는 이 냇물의 일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6. 이 냇물의 일부인 한 우리에게 자유는 없습니다.
7. 아무런 동기 없이 멈추는 것이 죽는 것과 사는 것의 핵심입니다. 천국의 뿌리는 삶과 죽음 속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왜 이렇게 되었는가?> 1983. 3. 17.
1. 이 땅과 골짜기의 아름다움을 지켜보는 것은 시간과 관계없는 일이지만, 관찰하고 인지한 것을 화폭이나 시로 옮기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2. 어쩌면 우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지금의 모습', 현재 그리고 미래에 존재할 우리와 인류 전체로부터 탈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3. 정신적 진화란 없다. 정신은 절대로 다른 것으로 변하거나 성장할 수 없다. 자만심과 오만함 그리고 이기심이 더 큰 자만심이나 오만함, 이기심으로 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내적으로 성장한다는 생각, 머리가 굵어지고 커진다는 생각은 내가 속한 사회가 바라는 인간상 그 범주안에서만의 성장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넓은진 생각과 포용심이 정신적 진화라고 생각한다.
4. '나'라는 존재는 절대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없다. 노력은 기울이겠지만, 또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라는 것은 미묘한 형태로 남아 있게 된다.
5. 왜 우리는 듣고 난 후에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설명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6. 각 전문 분야, 전문가가 되기 위해 단련된 사람이 과연 슬픔과 고통, 외로움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정확하고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훈련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훈련하다'라는 단어는 곧 길들여진다는 뜻입니다. 길들여진 마음이 정확하고 뚜렷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 1983. 3. 18.
1. 성대한 대성당에서 열리는 의식을 지켜보는 것도 오락의 한 형태다. 신성하고 종교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감정적이고 낭만적인 경험이며 독실함을 느끼게 하는 오락에 불과하다.
2. 깊은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어 당신의 모든 신경과 애착을 집중시키는 그런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그저 지금 있는 모든 일의 연속일 뿐이다.
3.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즐거움을 갈망하고 오락이나 종교 또는 다른 어떤 것을 통해 자신에게서 도망가도록 길러져왔다.
4. 검소함의 첫걸음은 아무런 왜곡과 편견 없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5. 지금 현재의 모습이 곧 미래의 나 자신의 모습이다. 피할 수 없다. 태양이 떠오른 후 지는 것과 같이 확실한 일이다.
<생각과 시간> 1983. 3. 25.
1. 지금 현재의 모습이 내일의 모습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천 개의 내일이 될 것이다. 시간과 진화가 인간의 현재 모습을 만들었다.
2. 인간의 정신이 근본적이고 지속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곧 지금 현재의 모습이 될 것이다.
3. 우리는 '현재의 모습'에서 달아나려고 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모습'을 억누르거나 초월하려고 노력합니다. 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받게 되는 엄청난 고통 역시 진지하게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장 지워버리고 위로받고 싶어 합니다.
4. 시간의 본질과 깊이를 정말 이해하려면 시간을 멈추는 것이 가능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의 본질에 대해 분석하고 조사하여 지속되는 정신이 현실인지 아니면 인간이 안정감과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희망일 뿐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5. 천국과 행성 그리고 셀 수 없는 별들로 이루어진 우주를 시간에 얽매인 마음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주와 인간의 움직임 전체를 이해하고, 언제나 진실인 것을 보자마자 알아차리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6. 생각과 시간의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정말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곧 세계다> 1983. 3. 31.
신이나 그것을 상징하는 것은 생각이 만들어낸 산출물이며 우리의 실생활에 존재하는 실상의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두려움> 1983. 4. 18.
1. 아침에게는 시간도 문제도 없다. 존재만으로도 기적 같은 것이다.
2. 기억 이외에 연속성이란 있을 수 없다.
3. 지식은 늘 과거 속에 존재한다. 지식이 곧 과거인 것이다. 과거는 전통처럼 오랫동안 축적된 기억이다.
4. 우리는 늘 미지의 것을 말로 측정하려고 한다. 모르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며 말과 문장을 통해 지속되는 소음으로 바꾸려고 한다.
5. 지식이 정신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식을 통해 한 걸음 더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것을 위해서는 기존의 지식이 끝나야 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새로우려면 여태껏 보지 못한 것이어야한다. 이 장소는 단어나 상징으로 이해되거나 파악될 수 없다.
6. 왜냐하면 기억 저편에 있기 때문이다.
<그저 지켜보는 것> 1983. 4. 19.
1. 인생의 혼란과 고통, 불안, 끝이 없는 슬픔에서 벗어난 뇌를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외부 영향이나 경험, 방대하게 축적된 기억에 물들지 않은 완벽하게 자유로운 마음과 뇌를 가지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2. 제한된 것은 배울 수 있지만, 제한되지 않은 것은 배울 수 없다. 우리는 정신세계에 대해 배우려고 노력하며, 그러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신세계 속 시간이란 허상에 불과하며 어쩌면 적일 수도 있다.
3. 생각이 허상을 만들어내고 그 허상이 진화하고 성장하여 커진다. 모든 종교적 활동의 허상은 아주 간단한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4. 우리의 인생은 너무 짧다. 이 짧은 시간 동안 기억의 움직임에 불과한 정신에 대해 배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단지 관찰만 할 뿐이다.
5. 열심히 주의 깊게 지켜본다 하더라도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고요하고 텅 비어있는 광활한 공간만이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통찰력> 1983. 4. 20.
1. 배우는 것은 곧 시간을 의미하지만, 지켜보는 것은 시간과 관계가 없다.
2. 모든 것에 주목하고 선택 없이 의식하는 사람만이 통찰력을 얻을 것이다. ---- 뚜렷한 주관은 필요없다. 단지 현상과 과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야 할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폭넓은 지식과 안목이 필수다. 주관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주관의 객관화가 이루어져야 ..
3. 통찰력이란 끝없이 지속되는 기억과 관계가 없다. 통찰력이란 잠시 비추는 빛과 같다. 모든 난해함과 번거로움 그리고 일어날 결과들을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
4. 그리고 이 통찰력은 완벽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후회도 없고 뒤돌아보는 일도 없으며 짓누르는 부담감도 차별도 없다. 순수하고 분명하다. 그 어떤 의심의 그림자도 없는 자각이다.
5. 지켜보고 듣는 것에서부터 우레와 같은 통찰력까지,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움직임이다.
6. 완벽한 통찰력은 시간과 생각이 끝나는 곳에서만 존재한다.
<욕망> 1983. 4. 21.
1. 인생은 '되어가는 것'과 '끝나는 것'의 끊임없는 과정이다.
2. 인생은 행동이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행동의 연속이다.
3.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은 왜곡되고 제한되어 결국에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끝없는 갈등을 일으킨다.
4. 동양의 종교는 의심을 품고 질문하는 것이 진실을 구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여긴다. 반면 서양의 종교 문화에서 의심은 불경 그 자체로 간주된다.
<명상의 시작> 1983. 4. 22.
1. 우리는 항상 비교한다. 학교와 대학에서 보는 시험 결과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 결론으로 이어지는 논쟁, 사람이 가지는 힘, 나라가 가지는 힘을 비롯해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고상하거나 비열한 우리 삶의 모든 면은 계산된 측정의 연속이다.
2. 절대 측정 불가한 것을 말로 측정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말이다. 이는 수세기 동안 행해져온 관행이다. 더 훌륭한 신과 덜 훌륭한 신을 비교하고 우주의 광활함과 운동선수의 속도를 측정한다. 이러한 비교는 엄청난 두려움과 슬픔을 낳았다. ---- 비교의 대가는 갈등과 우울, 강박과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한다.
3. 비교하지 않고 산다는 것.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형태의 측정을 거부하고 산다는 것. 현재의 모습과 미래에 되어야 할 모습을 절대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 '명상'이라는 단어는 비단 곰곰이 생각하거나 재고하고, 질문하고, 들여다보고, 따져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4. 명상은 산스크리트어로 이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로 측정하고 '되어가는 것'을 뜻한다.
5. 완벽한 무의식 상태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하는 명상을 말한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명상을 한다면 이것은 욕망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하며 욕망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6. 명상은 아무런 동기도, 말도, 생각의 활동도 없는 움직임이다. 반드시 의식적으로 준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래야 명상은 시작과 끝, 목적이 없고 측정할 수 없는 무한정 속의 움직임이 될 수 있다.
7. 명상은 성과가 아니다. 방법도 시스템도 관행도 없다. 명상은 비교를 멈추는 데에서 시작되며 무엇이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멈출 때 시작된다.
<생각의 활동> 1983. 4. 23.
1. 전 세계의 제도와 조직은 인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다양한 물질적 조직을 만들었다.
2. 제도는 절대 인간을 근본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왜 인간이 이런 제도를 만들어내 도움받고 싶어 하며 오랫동안 지속되는 안정감을 추구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이상할 만큼 궁금해 하지 않는다.
3. 제도와 조직 그리고 종교는 교활하고 영리하며 박식한 생각에 의해 형성되었다.
4. 생각과 분리된 사상가는 없다.
5. 결국 지식은 과거며 사상가는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생각이 과거를 만들어내고, 생각이 곧 과거다. 생각은 사상가를 만든다. 사상가는 반드시 생각을 구체화하고 조절해야 한다.
6. 하지만 이것은 오류다. 생각 외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는 내 자신인 동시에 과거다. 상상을 통해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지만 여전히 생각의 활동에 불과하다.
<모든 감각을 깨워> 1983. 4. 26.
1. 욕망의 근원과 목적 그리고 번잡함은 무엇일까?
2. 꽃은 바라볼수록 우리에게 본연의 모습, 매우 섬세한 색과 향기, 꽃잎, 줄기 그리고 뿌리를 두고 있는 흙을 보게 한다.
<단 하루라도 평화롭게> 1983. 4. 26.
1.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반복되는 갈등과 오고 가며 돈을 벌고 끝없이 일만 하는 지옥과도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픈 희망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2. 사랑은 곧 관대함과 보살핌, 서로를 해치지 않으려는 마음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는 마음이다. 관대하고 친절하며 인민을 느끼며 말하고 생각하는 행동을 말한다.
3. 우리는 삶을 사업적, 예술적, 과학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세계라는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왔다. 이러한 세계들이 모두 따로 떨어져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터에서 추악하고 부패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위선과 이중 잣대의 삶을 살고 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 1983. 5. 4.
<아무것도 없음 속에 모든 것이 있다> 1983. 5. 6.
1. 우리는 그 빛에 대해, 햇빛 자체가 아니라 반짝이는 물 위에 반사되는 태양에 대해 명상해볼 필요가 있다.
2.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 놓은 채 바다와 눈부신 빛의 반짝임, 선명한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관찰에는 중심이 없음을 알게 된다. 매일같이 씻겨 깨끗한 모래와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 어떤 발자국도 남지 않는다. 작은 새들의 발자국도 바다가 모두 씻어버린다.
3. 떠올랐다가 곧 사라지는 생각을 지켜보고 있으면 생각이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4. 지켜보는 것은 살아 숨 쉬는 것이다. 매 순간 비어 있다.
5. 나는 아무것도 지켜보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아무것도 없음 속에 모든 것이 있다.
<뇌를 길들이 것> 1983. 5. 9.
1. 내가 골짜기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산 역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2. 실제의 것은 절대 뇌를 길들이지 않지만, 이론과 결론, 묘사 그리고 추상은 뇌를 길들인다.
3. 언어 역시 그 자체로는 뇌를 길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의 이론과 특정한 감정의 추상적 개념 또는 발상, 상징, 사람의 모습을 한 추상적인 개념들이 뇌를 길들인다.
4. 불교인들은 부처님이라는 단어와 느낌, 형상을 통해 깊은 숭배와 감정, 헌신을 느낀다. 생각의 산물 안에서 안식을 찾는 것이다. 모든 지식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생각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 형상은 갈등을 불러온다. 인간이나 상징, 오래된 전통을 숭배하는 감정은 외부 이미지나 상징과 구분되면, 이 자체는 뇌를 길들이는 요소가 아니다.
<무엇이 인간을 바꿀 것인가?> 1983. 5. 12.
1. '내부지향적'이라는 단어는 참 신기하다. 누가 무엇을 지향하는가? 지향하는 이와 지향하는 것이 다르다는 말인가?
2. 우리는 두려움의 그물 속에 갇혀 기쁨을 좇기 위해 끝도 없이 고통 받아 왔다. 이것이 삶의 발자취며 그 어떤 것도 이를 바꿀 수 없다.
<소년과의 대화> 1983. 5. 30.
1. 생각이 왜 시작되었는지 무엇이 원인인지 알기 전에는 단 하나의 생각도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한다. 만약 우리가 어떤 생각도 빠져나가지 않도록 신경 써서 지켜본다면 우리의 뇌는 굉장히 고요해질 것이다.
2. 어차피 죽음이 우리 앞에 놓인 미래라면 우리가 교육 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범함이란 내적인 것, 즉 정신적 갈등과 문제, 고역 등을 뜻합니다. 훌륭한 과학자이지만 내면적으로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일 수 도 있다는 말입니다.
4. '어떻게'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결국 간접적인 인간이 되고 맙니다. 절대 '어떻게'라고 질문하지 말기 바랍니다.
5.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독창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내면에서 일어나는 활동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찰하고, 본질과 원인에 대해 탐구하지 않은 생각을 절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6. 삶이란 절대 단순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만 삶 자체는 어마어마하게 복잡합니다. 수평선에서 수평선으로 확장되는 것이 삶입니다. 옷 몇 벌과 하루 한 끼를 먹으며 살아간다고 해서 단순한 삶이 아닙니다. 그러니 단순해지세요. 복잡하거나 모순적으로 살지 말고 내면적으로 단순하게 사세요.
<종교와 과학> 1984. 3. 27.
1. 침묵이란 위해한 축복이다. 침묵은 우리의 뇌를 정화하고 생동감을 제공한다. 또한 침묵은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데, 생각이나 기계가 만들어낸 에너지가 아니라 오염되지 않고 생각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그런 에너지다. 측정할 수 없는 능력과 재능을 지닌 에너지다.
2. 종교는 과학의 한 형태다. 모든 지식을 알고 넘어서는 것, 망원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음과 심장의 방대함을 통해 자연과 우주의 위대함을 이해하는 것이다.
<모순 없는 삶> 1984. 3. 28.
1. 우리는 내면이 외면과 완전히 떨어져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외면과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한다.
2. 삶은 외면과 내면으로 따로 떨어진 두 개의 활동의 움직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느끼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이며, 이 사이의 연관성이 곧 움직임이자 슬픔와 기쁨, 즐거움과 우울함 그리고 외로움과 탈출의 썰물과 밀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삶이 조각조각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이다.
<왜 우리는 나뭇잎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죽지 못하는가?> 1984. 3. 30.
1. 왜 인간은 너무나 비참하고 불행하게 병들고 나이 들어 노망이 나고 몸이 쇠약해져 추한 모습으로 죽는가? 왜 우리는 이 나뭇잎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죽지 못하는가?
2. 부활은 없다. 그저 미신에 불과한 독단적인 믿음이다. 이 아름다운 지구의 모든 것은 살아가고, 죽으며, 태어나고 또 말라 죽는다.
3. 죽음의 중요성과 품위 그리고 죽는다는 것의 굉장한 단순함에 대해 머리가 아닌 마음속 깊이 이해한다면, 죽음은 우리 인생의 일부며 피하거나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학생들과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다.
4. 우리 이전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처음은 끝이 아니다.
5. 죽은 나뭇잎의 아름다움과 색깔을 바라보며, 나의 죽음에 대해, 모든 것의 끝이 아닌 시작에 대해 어쩌면 내가 깊게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죽음은 피해야 하고 뒤로 미루어야 하는 끔찍한 것이 아니라, 매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위대한 광대함을 만날 수 있다.
[출처] 크리슈나무르티의 마지막 일기|작성자 탄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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