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수상잡록/산을 물로보지마라3

22. 자연산 TV

by 靑野(청야) 2020. 11. 5.

22. 자연산 TV

 

<한참 무르익은 전남 화순의 세랑의 봄(펌)>

 

'자연산 TV'

 

보다 더 적확(的確)한 표현으로는 '자연산 디스플레이 장치'라 할 것이다

 

자연산 TV, '자연산 디스플레이장치'

뭔 말인지 인터넷에 물어보니 모른다 카네.

모르면, 정확한 의도나 기능등을 물어보고 정의를 내려주면 될 터인테

엉뚱하게 자연산 복어이니 자연산 문어니, LG디스플레이 맛집의 자연산 문어가 어떻고...

변명하듯 횡설수설(?)하며 얼버무리네

'TV',' 디스플레이' 이것들을 태생이 인공(人工)에 의한 것이거늘

그말에 '자연산'을 붙여 내가 맹글어 놓고 혹시나 그런 비유가 있나 싶어 물어보지만

있을 턱이 있나, 물어보는 나도 참...

 

요즈음, 대형 디스플레이 화면의 TV 선호도가 높다.

소득이 높아지고 기술이 발전하며 가격이 싸진 탓도 있겠지만,

 

가정용이 아닌 방송무대 용도같은 엄청 큰 사이즈의 디스플레이 수요도 만만잖아진 탓이다.

한마디로 대세가 된 듯 하다.

배경화면의 화려함과 다양한 구성의 자유로움 때문일 게다

여기에 촛점을 맞춘 디스플레이 업체,

이른바 내노라하는 국내외 업체들의 생존을 건 경쟁도 뜨겁다.

 

우리나라는 1961년 KBS TV가 개국하고. 흑백TV를 수입해 쓰다가

1966년 브라운관식 흑백TV을 생산하고, 1970칼라TV를 생산한 이래

PDP에 이어,LCD, LED, QLED, OLED로 다양한 TV와 디스플레이장치들이 발전하여왔고

선명하고 대형화되면서 가격경쟁력을 가진 제품 기술들이 상품화 하여 범람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고 어디까지 디스플레이 장치들이 발전 할 지

2차원화면에서 3차원 공간으로 튀어나와 4차원 디스플레이로 발전할지?

앞으로 도래할 기술의 진보와 진행과정이 무척 궁금해진다.

 

초대형의 디지털 디스플레이 장치는

출연자들의 출연 스토리나 상황에 맞게 사전에

준비된 화면과 연결하면서 자유자재로 변화무쌍하게 배경을 연출한다

무대배경 전체를 압도하는 디스플레이 제품과 기술,

컴퓨터속에서 온갖 조정. 처리를 다할 수 있으니, 오죽 자유롭겠는가?

굳이 3D 카메라가 아니라도, 굳이 홀로그램같은 4D 디스플레이가 아니라도

다양한 화면은 색깔과 농도로 실제모습과 원근의 깊이의 착각,

실제상황과 가상현실이 공존하며 모든 게 실제상황이듯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컴퓨기술과 대형 LED 디스플레이,곡면디스플레이를 가능하게 한 소재기술 발전의 결실이다

이 때문에, 무대장치 비용을 대폭 줄어들 터이니,

출연진 대접도 높아져야 될 터인데 어떨지?

 

자연산 TV !

 

산속 풍경은

거대한 TV 화면속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계절따라 시시각각 바뀌어가는 대지의 산천초목, 하늘의 변화 무쌍함이

두눈에 디스플레이 화면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신이 만든 자연산 3D,4D디스플레이라고나 할까?

인공의 디스플레이가 아무리 정교하고 다양하다하나

자연산 디스플레이에 비하랴?

 

TV프로그램이 무수히 존재하듯, 무수히 존재할 수 있듯이

자연산TV 속에서 연출되는 자연의 프로그램은 무궁무진하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의 선택은

누가 뽑아주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참여 의지에 달렸다.

 

우리는 생각하고 처신하기에 따라

자연의 TV를 끄고 사는 열외자이기도 하고

자연산 TV앞에서 꼼지락거리는 보잘 것없는 조연배우이거나

하늘과 산과 호수와 산천초목과 같이 당당한 주연이 되기도 하다

 

우리집 가까이에 자그만한 호수가 있다

물위를 떠나니는 꽃잎이나 낙옆,

철마다 바뀌어가는 , 초목의 화려한 변신

주변 산록의 모습과 하늘 모습이

고스란히 호수면에 잠겨 잔물결이 일때마다 춤을 춘다

<5월 중순의 경주 산내면의 대현>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이

물속에 잠긴 구름과 산봉우리를 넘나듬는다

호수는 실제현실과 실제현실이 수면 아래로 잠긴듯 하는

가상의 현실이 공존하는 무대이다

호수에 노니는 물고기 때가 유유히 물에 잠긴 하늘의 풍경을 지나면

고기떼들이 실제현실의 구름 속으로 유유히 헤엄치며 노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호수에 비친 가상현실은 실제현실의 그림자

가상현실은 실제 현실과 다르지 않다

가상현실에 구름이 떠 다니지 않으면 실제현실에도 구름없는 맑은 하늘이다

실제현실에 초목이 사라진 민둥산이라면 가상현실도 똑같이 민둥산이 된다.

 

호수를 바라보며 얼핏 플라톤을 떠올린다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의 꼭두각시인지

실제현실이 가상현실의 꼭두각시인지

우리의 삶이 실제 현실이라면

이 삶이 비추는 가상현실이 어디에 없을런 지?

우리가 어딘가의 실제현실이 비쳐진 가상현실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고개를 들어 호수면에서 눈을 떼고

산과 하늘로 눈을 돌리지 않는 이상

호수 속에 잠긴 산록의 실제가 가상현실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고개를 들어 호수면에서 눈을 떼고 산과 하늘로 눈을 돌리기만 하면,

실제현실이 어디에 있고 가상현실이 어디에 있음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삶의 집착에서 눈을 떼고 삶을 관조한다면,

우리의 삶의 진실한 모습과 허상을 알 수 있을 텐데...

 

실제현실은 우리 우주에서의 현실,

평행우주에서 실제현실과 동일한 이른바 평행현실을 존재한다고 상상한다

가상현실이 평행우주의 실제현실이라는 믿음도 있다

 

모든 사람들한테서 모든 삶은 나란히 흐른다.

이 삶만 있지 않고, 저 삶만 있지 않다.

따로 흐르지 않고, 하나만 흐르지 않는다.

그러니 ‘나란하다(평행)’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승’과 ‘저승’을 말하지만,

이승은 이쪽에 있는 삶이고 저승은 저쪽에 있는 삶이다.

우리가 이쪽의 삶을 선택하면 이쪽에 사는 것이고

저쪽의 삶을 선택하면 저쪽의 삶을 사는 것이다

두 삶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선택한 곳에서 우리의 삶을 살 뿐이다

 

하지만,

우리 삶이 실제 현실일지, 어딘가의 실제현실의 가상현실일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눈을 감으면, 가상현실이고 실제현실이고 중요하지 않듯이

 

우리가 마음속에 집착하고 머물 지

눈을 들어 대자연을 바라보며. 거대한 자연의 무대속에

당당한 주연으로 녹아들 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佛家經句,

화엄경의 사구계(華嚴經 四句偈)처럼

 

우리의 마음의 선택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2020년 5월8일

쓰다

 

'수상잡록 > 산을 물로보지마라3'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 크나큰 무대  (0) 2020.11.06
23. 산골에서의 하루  (0) 2020.11.06
21. 아! 칭기스칸!  (0) 2020.11.05
20. 진정한 삶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0) 2020.11.05
19. 마하무드라의 노래  (0) 2020.11.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