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봄날 귓전을 파고드는 뻐꾹새울음소리는, 한가로우면서도 애틋하고, 정겨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슬픈 멜로디로 친근히 다가온다. 어디선가 하늘하늘 어슴푸레 들려오는 뻐꾹새 울음소리는 망향가로 아득히 먼 날의 고향산천이 나를 부르는 듯하여,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뻐꾹새 울음소리는, 고향이 부르는 구수한 노랫가락 같다. 한적한 농촌 마을의 뻐꾹새 울음소리가, 햇살과 바람에 실려 산천에 울려 퍼지는 풍경은, 가슴 한편에 고즈넉이 걸려 있는, 전형적인 우리 고향의 옛 모습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요 “오빠 생각”에 나오는 뻐꾹새는 알을 품지 못한다. 멧새, 개개비, 붉은머리오목눈이, 노랑때까치 등의 둥지에 한 개의 알을 몰래 낳고 위탁한다. 부화 시기는 늦봄에서 초여름이며 알은 다른 알에 비해 10여 일 일찍 부화하여 본능으로, 다른 알을 밀어내고 둥지를 독점하며 유모 새의 덩치보다 배나 되는 몸으로, 20여 일간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다. 유모 새는 자기 새끼인 양, 온갖 정성을 기울여 초복 더위와 장맛비 속을 뚫고,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어린 뻐꾹새가 날개에 힘이 붙을 즈음, 적절한 시기에 맞추어 어미 새는 날아와 울음소리로, 자신이 친어미임을 알린다. 헌신적으로 키워 준 유모 새의 노고와 정성 따윈, 아랑곳없이 친어미 뻐꾹새를 따라 둥지를 떠난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그토록 우는가? 뻐꾹새는 자기 알을 품어 산란하고 키우지는 않았지만, 모정의 본능으로 어미 뻐꾹새는 적절한 시기에 때맞춰, 어미인 자기를 알아 달라고 애절히 울어 치는 처량한 소리는, 애절한 모성인가 보다. 이른 아침나절 잠결에 듣는 뻐꾹새 울음소리는, 하루를 평화롭게 하고, 한나절에 우는 뻐꾹새울음소리는,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저녁나절에 우는 뻐꾹새 울음은, 하루의 수고로움을 위로하는 소리 같다. 앞산과 뒷산의 풀숲에서 들려오던, 뻐꾹새 울음소리는 가까이서 우는 듯싶지만, 멀리서 울고 멀리서 우는 듯하지만, 지척에서 들려와 심금을 울려놓는다.
어린 눈에 찍혀버린 고향 풍경에는, 뻐꾹새의 소리가 빠질 수 없다. 땅을 터전 삼아 일구고 사는 순박한 농촌 마을, 콩밭 갈이를 한 소는 보드라운 풀잎으로 배를 양껏 채우고는, 외양간에 두고 온 송아지를 불러 울워치는 소리는, 앞, 뒷산에 메아리쳐 산골 마을의 적막을 흔들어 놓는, 한적하고 고요한 풍경, 풋풋한 초록 내음이 산천을 진동하며, 바람과 햇살도 한가로운 날, 밭고랑 김매던 옥순 할매, 한 많은 삶을 노랫가락에 실어 놓으실 적에, 먼 산 뻐꾹새도 뻐꾸욱 뻑뻑 꾹 장단을 맞추면, 워이~ 워이~ 옥순 할매 야발스럽게 냅다 소리를 지르며, 제 자식도 못 품는 요물이 어딜 끼어드느냐고 으름장을 놓으면, 더더욱 구슬피 울던 뻐꾹새 울음 따라, 내 마음도 울며 세월은 흘러갔다.
♪ 뻐꾹 뻐꾹 봄이 가네~ 뻐꾸기 소리 잘 가라 인사~ 뻐꾹 뻐꾹 봄이 가네~ 뻐꾹 뻐꾹 여름 오네~ 뻐꾸기 소리 첫여름 인사~ 뻐꾹 뻐꾹 여름 오네~ ♬
입가에 맴도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동요를 흥얼흥얼 읊조리며, 뻐꾹새 울음소리에 언뜻언뜻 담겨오는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둘씩 그려낸다. 일상에 지친 마음을 뻐꾹새 울음소리에 얹어, 그리운 이들의 얼굴을 뵙고 싶다. 뻐꾹새 울음소리에는 아득한 날들을 휘돌아 와, 세월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 간, 눈물겹게 어려오는 고향의 어르신과 동무들의 모습이 오롯이 담긴다. 해저 무는 산언저리에서 우는 뻐꾹새 울음소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저녁 먹으라 부르시는 정겨운 목소리같이 다가 와, 가슴을 흥건히 적셔놓는다. 뻐꾹새 울음소리에 실려, 옛 시절로 한 번쯤 돌아가고 싶은 건, 가슴 깊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고향의 소리가 아닌가 한다. 뻐꾹새 울음 따라 저물어버린 봄날이, 뻐꾹새 울음 따라 가슴에 다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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