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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수상잡록/수상록.에세이

한양의 풍수지리를 해부(?)_원고

by 靑野(청야) 2014. 10. 29.

 

안녕들 하신교?

 

늘상 하는 짓거리지만, 오늘도 씰데없는 소리 한번 해볼까 합니다. 이번에는 포맷을 좀 바꾸어서, 소리를 생생히 청각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해볼라쿠니,어떨지, 그동안은 씰데없는 이바구라도, 글로써 올릴려니 낑낑거리고 고생도 많이 되었는데, 이제 나이도 묵고, 눈도 침침하고, 글쓴다고 낑낑거리마 쭈글시럽기도 하고, 머리도 치근거리고 해서,

 

이번에는 그냥 생각나는 데로 씨부리고, 그것을 녹음해서 눈이 아닌 귀로 들어볼라쿠는 거지요.

 

공자 (孔子)아시는 죠? 구멍공자를 쓰는 공자, 왜 구멍공자를 쓰실까? 다 구멍에서 나왔으니, 그런 구멍은 아닐 것이고,,, 공자에는 '함께 공'자를 쓰는 공자도 있습니다. 이것은 공인(共人)을 말하지요. 함께 공(共)을 쓰는 공자 즉 공인은 공공대중의 모범이 되어야 하니, 행동이나 사유에 제약을 받지요.

 

민자회장님이나 철자님, 밍기성님등이 대표적인 공인들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공자는 공인들 중에서도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더 엄격함이 요구되는 공인이니, 이분들이말로 진짜 공자 아이겠는교?

 

이에,비하여 우리같은 사람은 야인(野人)이라 캅니다.  좋은 말로 '在野人士'라 할 수 있겠지만, 이거야 말로 쓸데없는 겉포장, 헛포장이고, 기껏 포장을 한다해도 야자(野들야子)정도라 할 수 있겠지요?

 

어디에도 구속받지않고, 책임도, 의무도 없고, 쪽팔리게 되는 일을 저질러도 툴툴 털어버리면 그만인,자유분망한 인생들, 부담없는 인간들...

 

공인과 야인, 공자와 야자! 크 멋지다. 안 멋진교? (아이모 말고)

 

티비를 보마,  어딘 채널에선가  'Who am I ? '란 주제를 시리즈로, 저명인사 모시고, 철학인가 인문학인가 세상사는 이바구를 재미있게 들려줍니다. EBS에서도 제법 들을 만한 교양프로그램이 많지요?  강사나 주제가, 간혹 헛소리다 싶은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 강사들은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공자들입디다.

 

헛소리 하면, 내같은 야자들의 몫아인교?

 

앞서도 이바구 햇지만, 씰데없는 이바구를, 나이도 묵고, 눈도 침침한데, 공자들의 말씀처럼  별스레 적자생존의 대상도 아니고, 그냥 흘러버리는 내용을 굳이 낑낑거리며 쓴다는 것이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에서 그럽니다.

 

욱조성이, 그러는 것 같습니다

 

"일마, 이 우둔한 친구야,  인자 그걸 깨달았다 말이가?"  하는 것 같네요.

 

그라몬 욱조성, "적자생존'이 무슨 뜻인지 아는 교?"

 

뭐라꼬요?...다~~무시기가 어쨋다고?  크 잘 안들리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게 그리 어러븐 말씀이 아인기라요, '적는 자가 살아 남는다' 요거이 '적자생존'아인교?, 여러분들은 6학년 입학했고, 입학시험도 다친 입장에 굳이 적을 것 까지야 없응께, 그나마 다행이것네요

 

"뭔 이야기할라꼬, 서론이 이리긴가? 빨랑 본론 꺼집어 내거라"

 

흥재성이 저만치서 소리질러대는 것 같네요. 그게 흥재성 특기지요?

 

"아,예, 시작하지요, 그러나,기대하지 마이소, 계속 헛소리가 이어질 터이니..."

 

티비 흉내를 내서 굳이  제목을 뽑아보라면,

 

'한양의 풍수지리(?)를 해부하다'

 

아니면, '한양은 천년 수도가 아니다?', 또는,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오판?' 정도로  하고도 싶네요

 

"뭐? 뭐라꼬? 야가 돌아 뿐나?...밥을 잘못 먹었나?... 맛이갔나? " 궁시렁거리는 소리, 별소리들이 다 터져 나오는 듯 하네요.

 

기라성 같은 공자님들 '함께 공(共)'자의 공자님들 앞에서 문짜 쓸라쿠이 뒷골이 간지럽기는 해도, 그런 재미로, 그런 짓으로 사는 것이 야자들의 본성이니 이해해주시오, 공자님들...

 

무릇, 어떤 지역을 평가할려면, 지정학적 위치와 풍수지리적 잇점을 살펴야겠지요? 넓은 위미로 지정학적 위치가 풍수지리설 속에 포함될 수도 있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구분하여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싶습니다.

 

'지정학적 위치'의 고려에는 물산의 출입이 용이하고, 그지역을 방어하기에  좋은 지리적 잇점을 가진 개념과 Global적, 즉 현대적 개념으로  미래지향적인 조건, 이를 테면, 무역이나, 물류의 요충이고 중심이 될만하거나 그런 배경을 가진지역이거나 그런지역을 거느린 형국의 지역인지를 살피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풍수지리설'은 좁게는 개인 거주지로서, 넓게는 한 나라의 도읍지에 이르기까지, 그 기능과 역활이 적절하겠는 지, 부적절하겠는 지, 어떻게 하면 적절한 조건을 갖추게 될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산세(山勢), ·지세(地勢) , ·수세(水勢) 등을 판단하여 이것을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연결시키는, 학문으로, 요즘식으로는 학문이라 카기는 뭐하지만, 당시로서는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매우 중요한 생활철학이요 학문아니였나 생각이 듭니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 즉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 것'의 줄임말입니다.  풍수지리의 핵심은 생기(生氣)의 취득에 있고, 생기를 만드는 기본적인 조건은 바람과 물, 즉 장풍과 득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풍의 ‘풍(風)’자와 득수의 ‘수(水)’자를 취하여 풍수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라 캅니다.

 

........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기로 하여, 무학과 정도전의 의견을 듣고 정도전의 견해에 따라, 궁궐을 지금의 경북궁위치에 잡았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아잉교?

내가 1973년에 처음 서울에 온 이후, 모두 두번더 서울로  다시 올라왔으니 모두 세번씩이나 상경한 것이지요. 그랑께, 그동안 살은 햇수를 합하면, 모두 20년정도를 살은 셈이지요. 하지만 그 세월동안, 서울말 한마디 못배웠고, 우찌, 인왕산을 한번도 올라가 보지 못했는데,  이번 재경동기 문화기행 덕분에, 인왕산을 넘어가 볼 수 있었지요. 헌데 그게 탈이 된 기라요. 그 때문에 정도전의 작품을 감상하며, 무학의 작품계획도 비교하게 된 기회를 갖게 된 것이지요. 그런 기회를 가져, 좋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고마 조디가 근질거려 한마디 찌꺼리지 않을 수 없게 되어뿌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 한양은 천년 수도감이  아니다', '무학대사과 정도전의 오판' 이라 하고 싶네요. 그러니, 500여년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고쳐낼 수도 없고 해서 나름 안타까울 뿐임니다.

 

'반풍수 집안망친다' 는 말이 있지요?

 

풍수는 풍수를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반풍수라면, 제대로 된 풍수를 보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 감놔라 배놔라 하다가는 집안 망친다는 것인데, 내가 그꼴로 비쳐지기 싶상입니다. 하지만, 내가  씨버린다고 여기에 감놓을 것도 아니고, 저기에 배놓을 것도 아니니, 내가 반풍수가 맞을 지 모르지만, 내 때문에 집안 망할이유는 없겠지요?

 

무학대사나 정도전 하면 역사적으로 유명인사들이니, 풍수지리에는 통달한 분들아니겠는교? 이분들이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도읍과 궁궐의 터, 궁궐의 방향을 정했다는 데,  하지만,이들  대가들에게 이견이 컸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처럼, 대가들에게 이견이 있었다는 것은 대가들이 보는 관점에도,  정답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아니면 정답이 여러 개이던가?  즉, 서울의 풍수지리는 한나라의 도읍을 정하기에 부적절한 데, 어거지로 풍수지리설을 끼워 맞추었거나, 여러 해석이 나오도록 풍수지리가 애매함을 지니고 있다는 방증아니겠는교?  그도 아니면, 풍수지리설 자체가 불안전하다는 것일 수도 있고...

 

"안그렇겠소 ?", "오리야 안글나? "

 

정답이 여러개라면 즉, 세개, 네게 되지 말라는 법 또한 없을 터...그래서 숫가락 하나 더 얹는 다는 기분으로 내도 씨부려 볼랍니다.

 

풍수지리설이 우리 생활과 밀접하면서도, 그 설이나 이론이 민간에 떠도는 잡학수준으로 배척받아온 바 있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른바, 명당이라는 것이, 굳이 어려븐 역학이나 이론이 아니라도, 상식적으로,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고,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턱없이 불어 제끼지 않고, 공기의 흐름이 적당히 조절되며, 온습도와 수분이 사람살기에 적당하도록 유지,제어되고, 그지역의 출입이 원할하고 주변이 너무 막히지도, 열리지도 않아 안정감을 주는 그런 곳이 명당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곳이라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물산이 풍부해지고 인심이 크고, 인재가 나며, 사람들이 여유로워지니 화목하고, 오래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지역을 찾고, 선택하고, 위치시키는 제반이론과 작업이 이른바 [풍수지리설] 아니겠습니까? 요거이 내식으로 풍수지리를 이해하는  요체라 할 수 있지요.

 

굳이 옛부터 이를 무슨 무슨 법이라하여 이것이 풍수지리설이라 했쌌는 데, 그말이 그말이지 싶습니다, 일단 한번 훑어봅시다. 그런 풍수지리설에는 간룡법, 장풍법, 정혈법,득수법, 좌향론등이 있다 캅니다.

 

[간룡법]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는 땅의 연원 즉 조산(祖山) 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 마을 뒷산, 즉 주산(主山)에 이르르기까지 산맥이 힘있게 끊어지지 않고 잘 달려왔는가를 보는 것이라합니다. 이거야 말로 한국적이지요? 

 

산맥없는 나라, 산을 등질 수 없는  평야나 평원지대인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이나, 러시아의 모스크바의 레닌그라드 주변등, 이런바 대국들의 수도들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동네는 그동네 다운 또 무신 풍수지리설이 있을런지? 

 

세종대 대학원에서 ‘조선초기의 풍수지리사상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송암(松巖) 강환웅(姜煥雄) 선생의 논문에 의하면, 산을 등질 수 없었던 평원지대서 우선시되었던 것은, 물길을 살피는 이기풍수였는 데 산악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풍수지리에서는 지기의 흐름인 산맥을 용(龍)으로 본다고 합니다. 생기가 넘치게 뻗은 용을 보통 좋은 것으로 판단한다는 데, 간룡의 요체는 조산(祖山)에서 주산을 거쳐 혈장(穴場)에 이르는 맥의 연결이 생기발랄한가를 보는 것이랍니다


[장풍법]은 주산을 중심으로 명당주변의 산세를 살피는 방법으로. 명당주변의 산세가 포근하게 사람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카네요. 무정하게 돌아앉았거나 외면하는 산세는 좋지 못한다는 데, 가장 전형적인 장풍법은 사신사(四神砂)의 구조를 살피는 것입니다. 사(砂) 는 혈을 둘러싼 주위의 산봉우리를 가르킵니다. 사신사는 4개의 신령스런(?) 산봉우리를 말함이니,

 

사신사(四神砂)는 우리가 잘알고 있는 좌청룡(左靑龍 ) 우백호(右白虎), 남주작(南朱雀)·북현무(北玄武)를 말합니다 즉,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며, 좌측은  동쪽이고 이를 청룡의 지세이고, 우측 은 서쪽이고, 백호의 지세에 해당된다는 것이지요


[사신사(四神砂)즉,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남주작(南朱雀)·북현무(北玄武)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형태는 서울을 예로 들면, 북악산이 북현무인 주산이며, 북악산은 다시 조산(祖山)인 북한산에서 맥을 이어받았고, 주산은 혈장 뒤에 우뚝 솟아 위엄을 갖추고 명당의 얼굴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좌청룡·우백호는 주산의 좌우에서 주산을 호위하면서 명당을 감싸는 모양을 갖추어야 좋다고 합니다. 한양에서의 좌청룡은 낙산, 우백호는 인왕산이라 합니다. 남주작은 조산(朝山)인데 말 그대로 임금인 주산에 대해서는 신하와 같은 산으로서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듯 한 모양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서울에서는 관악산이 이에 해당하는데,  조산으로서는 다소 기가 센 것이 흠이라 합니다. 그리고 주산과 조산 사이에 책상과 같은 산이라 하여 나지막한 안산(案책상안 山)이 있는데 서울 남산이 이와 같은 산이라 한답니다.]

 

요것이 정도전과 같은 풍수지리설의 대가들이 해석하는  한양의 풍수지요. 무학대사는 이런 풍수론에 견해를 달리합니다. 무학대사은 주산을 인앙산으로 하고, 좌청룡을 북악으로, 우백호를 남산으로 할 것을 제안합니다. 정도전식 해석의 좌청룡격인 낙산은 해발 100m남짓으로 산이라기보다는 언덕 비스무리한 것으로 좌측에서 혈장을 감싸기에는 너무 약하다 본 것이고, 남주작인 조산(朝山)으로서의 관악산은 다소 기가 센 것이 흠이라 본 것이지요.

 

풍수쟁이들의 이야기로는 득수란 다만 물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생기가 응축된다는 뜻입니다, 풍수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이 생기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앞서 소개하였듯이 강환웅(姜煥雄) 선생의 논문에 의하면,  산을 등질 수 없었던 평원지대서 우선시 하는 것이  이기풍수인데, 정도전이 이에 기반하여, 득수를 중시하여 물을 얻도록 했고, 무학대사는 산세가 많은 조선의 풍수를 고려해, 장풍을 중시해 산세의 조응을 살폈다고 합니다.

 

풍수쟁이들 말대로, 풍수에서는 장풍보다 득수를 우선으로 친다며, 만약 무학대사의 말대로 인왕산을 주산으로 했다면 한양은 가까이 있는 물을 얻지 못하는 생기 없는 땅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는 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드네요.  동서로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이 마를리도 없고, 무학대사가  그 정도도 모르고 인왕산을 주산으로 주장했을리 없을 테고, 정도전 역시, 무학의 주장이나 자신의 주장의 허점을 모를리 없었을 텐데, 여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풍수지리설의 범위를 넘어서는 고도한 정치적 요인이 결부되어 있었고,  풍수가 그런 정치세력간의 다툼에 활용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사실을 제대로 모르는  후세 반풍수 풍수쟁이들이 떠드는 글들을 보니,  거꾸로 정도전의 결과에 풍수지리설을 맟춘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도전의 사신사와 정혈>

 

여기서 참고로 서울인근의 산들의 높이를 봅시다. 인왕산 340m, 낙산 125m, 북악산 342m, 남산 262m, 안산 296m, 북한산 837m,도봉산 740m, 청계산 618m, 대모산 293m, 관악산 632m, 아차산 287m라합니다. 네이버에서 알아보고 옮겨졌었습니다.

 

정도전은,  주역(周易) 說卦傳(설괘전)이나,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 제14(第十四)의 배북남면(背北南面)에 소개된, 궁궐은 남면 즉, 남쪽을 향해야 한다는  이론에 충실하다보니, 앞서의 사신사의 배치가 그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어두운 곳[북(北)]에서 밝은 곳[남(南)]을 본다'는 관점으로,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地勢)라는 뜻으로, 풍수지리설에서 주택이나 건물을 지을 때 이상적으로 여기는 배치라 보는 것입니다.

 

 <무학의 사신사와 정혈>

 

그러니,  무학대사의 견해에는 인왕산이 主山이나, 祖山이 애매하여 북한산으로 보기에는 배치가 너무 떨어지고 산만하고, 궁궐의 방향이 동면쯕 동쪽을 향하거나 동남면을 향하도록 되니 당연히, 배척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겠지요.

 

내가 인왕산에 올라 두 대가들의 의견을 떠올려 보니, 두분의 풍수지리개념 모두에  찬동할 수가 없습디다. 이것이 내가  입이 근질거리는 원인이고 이로인해  씨부리게 되는 것의 동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선 정도전의 시각은 풍수지리 이론에 충실하다보니, 사신사와 배북남면의 구색갖추기에 너무 급급했다고 보여 집니다. 낙산을 좌청룡으로 본 것은 일반 택지면 충분할 지 모르지만 일국의 도읍지의 좌청룡으로는 너무 약합니다. 또, 남주작인  조산(朝山)인 관악산이 무악대사의 의견처럼 다소 기가 센 것이 흠이지요? 또, 주산과 조산 사이에 책상과 같은 나지막한 산이라 하여 남산을 안산(案책상안山) 으로 본 것인데, 나즈마한 것이기는 해도, 좌청룡은 이보다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것이니, 뭔가 어거지 같이 사신사를 맞춘 느낌이 듭니다. 여기 안산 즉 책상안 안산은 鞍안장 안 산이 아닙니다. 

 

서대문구의 안산은 말안장 안 즉  '가죽혁자와 편안할 안을 합친 글자' 즉 말안장이 그모양이지요? 그 안산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위치하고 있고, 무악산으로도 불린답니다. 이는 조선 건국 당시 한양에 도읍을 정하는 데 도움을 준 무학대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무학대사가 이곳을 둘러본 것이겠지요.  역시, 조선건국시절에 정도전과 경쟁관계였던 하륜이 이산 남쪽을 도읍지로 추천하였다고 합니다.안산을 主山으로 봤다면, 좌청룡이 인왕산이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무학대사도 하륜의 추천을 고려해봤을 것입니다.

 

'서울의 풍수지리는 한나라의 도읍을 정하기에 부적절한 데, 어거지로 풍수지리설을 끼워 맞추었거나, 여러 해석이 나오도록 풍수지리가 애매함을 지지고 있다' 는 내 논리의 근거를 예서도 느껴볼 수 있지 않습니까? 

 

사신사의 구조가 만드는 넓이가 크면, 도읍이나 고을 및 마을이 입지할 수 있는 명당이 되고, 국면이 협소하면 음택이 입지하는 땅이 됩니다. 즉 풍수지리에서 음택과 양택이냐하는 구분은 오직 명당의 크기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조산-주산-혈장으로 이어져 뻗어나가는 기세가 안산(案책상안 山) 즉 남산에서 방해를 받으니, 한 나라의 천년 도읍지로는 부적절하다고 보여지네요. 그런 전차로, 경복궁에서 광화문을 거쳐 뻗어나간 세종대로가 시청을 지나서 바로 좌우로 굽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물론 정도전시대에는, 5만, 10만 아니면, 20만? 정도의  인구를 예상한 이른바 4대문안의 풍수만을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무악의 말처럼, 200년후에 나라가 멸망할 정도로(임진왜란) 큰 변란을 겪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도로구조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지요. 

 

무학의 견해는 정도전이 배척한 바도 있지만, 내생각에도 그점은 동의합니다. 거기에 추가한다면, 무악대사가 주산으로 삼은 인왕산에 비해 좌청룡에 해당되는 북악산의 기세가 너무 세고,  우백호로 남산을 삼는다 했지만,  주산인 인왕산과 너무 떨어져 있어, 이른바  좌청룡·우백호는 주산의 좌우에서 주산을 호위하면서 명당을 감싸는 모양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흠입니다.  그러나, 정도전의 득수 위주의 풍수에도, 성을 쌓거나, 물길을 내는등 기세를 누르고 약한 것은 보하는 조치들이 무수히 있듯이 이렇게 설정된 사신사에도 허점이 있다면, 보조적으로 조치를 취하면 될일일 것입니다.

 

그리되면, 주산인 인왕산을 거쳐 혈장을 지나 뻗어나갔을 도로는 동대문부근을 지나 멀리 현재의 성남대로나 강동대로 쪽을 향하여 국운이 그처럼 벋어나가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내가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 공사중인 제2롯데월드의 모습이 그방향에 서 있읍디다.

 

우쨋거나, 600년 가까이를 한나라의 수도로 유지되어 온 것은 사실인바, 정도전의 공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그 공을 폄하할 의도는 손톱만큼도 없기는 합니다. 다만, 멸망 수준의 우여곡절의 변고를 겪은 것이나 앞으로 남북의 통일시대를 상상해보면, 서울은 풍수지리상으로 천년수도로서의 자격이 부적절하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그래서 세종시로 천도 이야기가 나왔을란가? 세종시나 이전부터 도읍지로 민간에 떠돌았던 대전인근의 계룡산 부근이나 대전지역, 옛 태봉국 수도였던 철원도  한번 가 봐야 되겠네요, 하지만, 그곳들 역시 그나마 풍수지리상으로, 지정학상으로 서울만한 곳이 아닐 것이라 느낌이 드는군요. 지정학상으로는  미래세대, 통일시대를 위해서는 개성이나 평양도 괜찮지 싶은 데, 풍수지리상으로 어떨런지, 가보지 못해 머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처럼, 간룡법과 장풍법을 통해 대략적인 명당의 범위가 확정되면 어느 부분이 생기가 모이는 혈처(穴處)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혈을 정하는 것이 [정혈법]입니다. 땅에도 몸과 같이 경락(經絡)의 체계가 있고 혈이 있다고 합니다. 이 혈기는 경락을 타고 흐르던 기가 잠시 멈추는 기의 정거장과 같은 장소입니다.  즉 혈장이라 하는 것입니다. 한방에서 침을 혈에 놓게 되는데 혈을 벗어나면 효험을 기대할 수 없듯이. 이와 같이 명당에서 혈을 찾는 것도 침구술과 같이 털끝만큼의 차이가 있어도 명당으로서의 가치가 상실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정혈은 어려운 것이라 하는데,  서울의 혈처는 경복궁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그닥 정답은 아닌가 봅니다. 천하에 혈처가 한 곳 밖에 없겠습니까? 만일 경복궁터가 유일한 혈처라면, 청와대는 경복궁을 헐고 그자리에 서야지요? 그러지 못해 이나라의 환란, 청와대의 환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풍수지리설 신봉자들은 주장할지 모르겠네요.

 

배산임수라,  앞서 명당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서 물도 중요한 역활을 하는 것이니, 물길을 보는 것이 [득수법]입니다. 앞서 간룡과 장풍법을 통해본 산의 흐름과 조화되어야  하고, 산의 흐름이 부드러우면서 힘있는 모습으로 꿈틀꿈틀 벋어 있는 모습이여야 하고,  물의 흐름은, 이런 산의 흐름을  따라  뱀이 기어가는 모습처럼 구불구불 유장하게 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지를 얻는 것이 득수법이라 합니다. 이런 입지라면, 음용수나 상하수도용 물을 얻기도 용이할 것입니다. 단순한 택지가 아닌 한나라의 수도라면, 음용수나 상하수도용 물을  쉽게 확보할 수 잇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물길의 출입이 어떤 경우에도 환란에 이르지 않도록 조절되는 지세나, 조절이 용이하도록 다스릴 수 있는  조건, 즉 치산치수 조건이 있을 수 있는가가 기본에 깔려야 되겠지요?

 

 

우주, 대자연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하고,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운행의 질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당에 배치하는 기능들의 방향에 따라서 기의 영향도 상당히 차이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입지는 이런 자연현상의  성격에 따라 적절한 방향이 결정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좌향론(坐앉을 좌 向論)]이라 합니다. 즉, 좌란 혈의 뒤쪽 방향을 말하며, 향이란 혈에서 앞을 본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좌향은 지기와 천기(天氣)의 조화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간룡법-장풍법/득수법은 거시적 조건이 되는 것이고, 정혈법-좌향론은    미시적 조건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의 수도는 간룡법-장풍법/득수법은 거시적 조건이 중요한 것 같고, 궁궐이나 핵심 건축물은 정혈법-좌향론등 미시적 조건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왕산에 올라 천하(서울시)를 조망해보니, 내견해로는  거시적 조건만으로  서울은 그렇게 좋은 풍수가 아니다. 싶지만, 무악대사나 정도전이 어딘들  다녀보지 않았겠습니까? 이만한 곳이 없다 하여 이곳에 정했을 것입니다. 개성이나, 평양은  생기가 쇠하였다고 봐서 다른 곳을 찾았을 터이니, 이보다 지정학상이나, 풍수지리상으로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정도전과 무악대사가 간룡법과 장풍법/득수법의 대강에는 견해를 같이하여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의 공간을 명당으로 본 것 까지는 견해가 일치하지만,  사신사나 정혈법, 좌향론에서는 견해를 달리하였습니다. 정도전나  무악대사라고 정혈법을 몰랐겠습니까? 좌향론을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왜? 유.불의 세의 다툼, 배불숭유정책을 채택한 정도전 세력의 고집이였을 수도 있고, 불교세력배척을 위한 포석이고 시발을 알리는 결단이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배경이라면 더더욱 정도전의 해석이 부자연스러워지고, 그 부자연스런 옷을 서울이 500년 넘게 걸쳐 입고 여기까지 온 택이 되는 겁니다. 

 

내가, 건방시럽게, 500년전으로 되돌아간다면, 나로서는 어떤 견해로 한양의 풍수를 재해석하고 도성을 설계했을까? 궁금안하시죠? 궁금안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나는 씨부릴랍니다. 만화그리듯이 씨부릴랍니다, 씰데없이 딋풍치고, 우리꼬맹이 말대로,  정말로 씰데없는 일 파고 들기가 취미인데 우짭니까?

 

물산의 출입이 용이하고, 지역방어에  좋은 지리적 잇점을 가진 개념과 Global적, 즉 현대적 개념으로  미래지향적인 조건을 염두에 두지 않고 순수하게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한나라의 도읍지로서 500년전으로 되돌아가서 재설계한다면 어떻게 할까?

 

주산은 무악대사의 말대로, 인왕산으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좌청룡역시 무악대사의 견해대로 북악으로 합니다. 그런데 우백호가 문제입니다. 무악은 남산을 우백호로 하면, 주산을 둘러싸서 보호하는 기능의 역활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그리고 인왕산이 주산이 될 경우 주산을 받쳐주고 보호해줄 조산이 애매합니다. 그래서 우백호는 안산鞍안장 안山으로 하여야 합니다. 안산으로 우백호를 삼으면, 주산을 감싸 안듯하는 보호기능이 역시 떨어지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읍니다만, 500년 앞을 내다본다면, 보다 큰 지역을 도읍지로 품을 수 있게 되고, 안산과 한강을 있는 성벽을 쌓아 커버를 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현대적 대도시를 고려한 사신사와 정혈>

 

그리되면, 주산과 좌청룡 우백호가 튼튼하게 좌우에서 받 쳐주기 때문에 조산으로서 도봉산-북한산을 거쳐오는 백두산,태백산의 기세가 좌청룡인 북악산을 거쳐 조산인 인왕산을 받쳐주게 됩니다. 그리고 좌향론으로 보면, 지금처럼 서울시청과 남산사이에서 좌,우로 구부러지는 왜곡현상이 없이 남산과 낙산사이로 한없이 뻗어갈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합니다. 비록 남면을 향하지 못하는 단점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정혈법으로 어느정도 커버가 될 사항이고 되어야 하는 사항입니다.

이상으로,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아무래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리를 찌끄렸읍니다.

 

이 모든 찌껄임, 아니면 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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