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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잡록/수상록.에세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by 靑野(청야) 2014. 7. 6.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을  박살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우주보다 더 고귀하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 것도 모른다.]

라고 했다.

또, 니이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문>에서

[인간은 실로 더러운 강물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그 더러운 강물을 삼켜버릴 바다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했다고 번역하는 데...

그렇다면, 파스칼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하는 능력'을 우주보다 더 고귀하게 본 것이고,  니이체는 인간사회는 동물적 본능으로 더렵혀지고 오염되고 있는 강물이다. 인간이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강물을 삶켜 버릴 수 있는 바다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바다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갈대와  그리고  바다가 되라?

나이들면서 지나간 것은 지난 일일뿐 앞으로만 생각하면서 살아가려 해도, 어찌 지나온 기억들이 기억으로, 추억으로 스쳐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가 있겠는가? 누구나 그렇듯이, 지금도 그렇지만, 일찌기 인간의 존재에 대해 심히 고뇌하고 탐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내용들은 그것이 딱히 이것이다 내세우지는 못해도, 아마도 내 일생의 처신의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역시, 오래전에, 인간의 존재에 대해 깊이 사유하던, 시절에 배운 유명한 귀절임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것은, 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과 함께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는 데까르트가  한 말이다

생각도 생각나름이리라.  파스칼이나 데까르트는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한다는 것일까?  무슨 생각을 하기에 연약한 갈대를 넘어서 존재론 운운하는 것일까?

자아?, 비판능력?, 지식?,  지혜?, 고귀함?  사람으로서의 처신? 

생각한다는 것이 인간이 존재와 본능, 이성을  인식하는 것인가? 동물적 본능을 제어한다는 것인가? 파스칼이나 데까르트가 말하는 인간의 생각의 대상에 대한 정의가 궁금해진다.  무턱대고

`생각하면 존재한다?'.
`생각하면 고귀하다?´

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존재와  우주와  고귀함을  다투는 그런 수준의 생각의 대상 이라면, 생각의 대상이 시대에 따라,  세태에 따라 변환다면 그것은  진정한 생각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  지극히 논리정연하고, 거의 궁극적으로 불변하는 진리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수준의 생각의 대상이라면  아직은 진리인지는 모르지만  진리 지향적인 생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개인적으로  宇宙운운, 存在운운  할 정도의 생각, 思惟라면 자연과 조화를 지향하는 노자의 무위자연의 사상을  그런 사유들의 정점으로 삼고 쉽다.  개인적으로 도덕경을 깊히(?) 탐구해왔지만, 꼭 그렇다해서 그리 생각하는 것만은 아니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인간은 대지를 본 받고, 대지는 하늘을 본 받고, 하늘은  도를 본 받고,  도는 자연을 본 받는다.

이것은 도덕경 25장 끝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노자도덕경은 노자사후 대략100년내에 발간된 것이, 초간본으로 2,000자 남짓, 그리고 AD 200경, 즉 노자 사후 700년 경에, 그동안 통용되던 도덕경을 왕필이라는 사람이 정리한 것으로, 통행본이나 통용본으로 불리는 왕필본이 약 5,290자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노자사상의 핵심은 이 13자에 모두 녹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13자는  '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연그대로' 즉 그런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삶을 산다는 의미를 지닌   '無爲自然' 이라는 4자로 압축되기도 한다.

중국의 현대 노자철학대가인 야오간밍은 그의 저서 `老子講議´에서 헤겔이 도덕경을 두고

`그리이스 철학을 능가한다´

고 말했다고 소개한다.

2,500년 전에,  一人 내지는  소수人이 고대 한자 5290여자로  기록한 사유결과가 어찌 위대한 인류문명의 유산과 비교되겠냐마는 꼭 그렇게 부정할 수만은 없는 것이,

불가에, 만권의 책을 읽고,  쓰도 `소(疏)´ 에 머무를 뿐 경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든지, `E=m×c의 자승(에너지=질량×광속의) 제곱)´으로 대표되는 아인시타인의 사유결과가 현대물리학의 대개의 책들의 사유근거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만권의 만은  '많다', '셀 수 없는 수 많은 ' 의 의미를 지닌다.

[諸行無常, 諸法無我, 一切皆苦, 涅槃寂靜]
모든 존재 변화한다. 어디에도 실체 없다. 그러니 실체에 집착하면 모든 것이 고통이요, 이 집착을 벗어던지면 열반에 드는 것이다

불교사상은 이16자에 압축되어 있다고 볼 수있다. '열반에 든다' 는 것은 이처럼 '고통에서 벗어난다' 는 뜻이다. '죽음'을 육체의 고통을 영원히 멈추는 것으로, ' 열반에 드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16자의 불가의 핵심사상을 설명하는 데, 어쩌면, 팔만종의 경전과 5,233만자,  그외  셀 수 없는 무수한 소(疏) 와 강론이  수천년을  넘겨 필요해왔던 것이다. [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를 설명하는 데, 5,200여자가 넘는 글자가, 도덕경에 사용되었고, 이후 동서고금에 걸쳐 1,600가지 이상의 도덕경 해석서가 존재하게 된 배경과 유사한 것이다.

그러니, 인류에게 잘 알려져 있는 파스칼,  데까르트, 니이체의 그 초절한 저술들이 그런 만권류 책중의 하나일  뿐일 지?  그만한 명제나 말씀들이 만권의 책류의 사상적 정점에 자리할만할 사유의 결과일지?  감히 묻고 싶은 것이다.

왜 묻고 싶은 생각이 드는 지? 

나도 모른다.

아마도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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