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모수(解慕漱), 주몽(朱蒙) 또는 추모(鄒牟), 해부루(解夫婁), 금와(金蛙), 부여풍(夫餘豊), 교기(翹岐) 등으로 이들의 성이 해(解), 고(高), 부여(夫餘), 여(余)로 이들의 원류가 오(吳)씨 집안이라고 중국 역사학계에서 증명된 바가 있다.
사실 오(吳)씨 집안은 주(周)나라 왕성인 희(姬)씨에서 파생된 가문이자 오왕 수몽(壽夢)의 아들 오계찰(吳季札)의 후손들로 오나라가 월나라에게 망하여 뿔뿔히 흩어진 뒤부터 사용되었다고 볼수 있다.
춘추시대에 오나라가 망한 뒤, 계찰의 후손 일부가 송화강(松花江)으로 망명하여 기원전 408년에 부여를 세웠는데 그시조 해모수가 바로 계찰의 후손 중 한 사람이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기원전 248년에 해모수의 5대손 해성(解星)의 아들 고운(高雲)이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추모성왕(鄒牟聖王) 고주몽이다.
그리고 그 고주몽이 기원전 227년에 고구려를 건국했고 그 19년 뒤, 해부루의 서손 우태(優台)의 아들 비류가 백가제해 즉, 백가구가 바다를 건넜다 해서 일컬어 백제(百濟)를 건국했다. 아비 다른 온조는 십제(十濟)를 건국했다. 비류백제의 마지막왕이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침으로 396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왜(倭) 15대천황 오우진천황 응신(應神)이 되었다.
일본의 14대 이전까지의 천황들은 모(毛)씨였지만, 15대 째 부터는 진(眞)씨 응신(應神)이 천황이 되었고 야마토(大和) 왜(倭) 라 한다. 이로써 부여 고구려 백제 및 왜(倭) 왕조의 원류가 오(吳)씨 가문으로 증명 된 것이다.
吳는 본래 희(姬)성 이다. 처음에 주무왕이 상나라(은나라)를 이기고 마침내 태백(주태왕 고공단보의 첫째아들)과 중옹(주태왕 고공단보의 둘째아들)을 吳땅에 봉하니 서로 전하여 19世에 이르러서 수몽이 비로서 왕이라 일컬었다. 수몽의 아들이 저번이요, 저번의 아들은 합려요 그의 아들은 부차이다.
부차(춘추시대 吳王)에 이르러 월왕 구천에게 멸망하게 되었으니 모두 25世에 이르렀는데 월이 吳를 멸망하고 부차의 아들 이의를 吳에 봉하여 식읍으로 2읍을 내려 그 선조를 제사하게 되었다. 그뒤에 이의 의 아들 루양이 위나라에 들어가니 위후가 이르기를 본시 오나라 사람이다하고, 吳를 사성하니 이로부터 오씨가 비로서 세상에 드러났다. 고증하건데 춘추절서편에 오누양이 있으니 누양은 곧 부차의 손자 이다. 누양의 뒤에 오공 기起가 있고 뒤에 오공 첨瞻이 있어 서로 이어서 후세에 전하였다. 득성시조(得姓始祖) 오태백(吳太伯) , 개씨시조(開氏始祖) 오계찰(吳季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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