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쓴 국내 첫 장편소설
이문열 "무수한 물음표를 던지는 우리 시대의 문제작"
마침내 누군가는 기대하고 누군가는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이 쓴 장편소설 단행본이 독자들을 찾는다.
한국 문학사 최초로 사람이 아닌 기계가 소설가로 데뷔한 것이다.
파람북 출판사는 AI 스타트업 '다품다'가
자연어 처리(NLP) 스타트업 '나매쓰'와 협업을 통해 개발한
AI 소설가 '비람풍'이 김태연 소설감독의 기획과 연출 아래 쓴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
를 출간한다고 20일 밝혔다. 공식 출간일은 오는 25일이다.
이로써 지난 2008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로
AI가 쓴 단행본 소설이 나온 지 13년 만에
국내에도 AI 기반 소설이 등장하게 됐다.
2016년 일본에선 AI가 쓴 단편이 문학상 예심을 통과하는 일도 있었다.
2018년에는 사람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AI 소설 '1 the Road'가 출간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초단편 AI 기반 소설이 경쟁하는 문학상이 시도되기도 했다.
AI 소설가의 이름 비람풍(毘嵐風)은
우주 성립의 최초와 최후에 분다는 거대한 폭풍이란 뜻으로,
문학사에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불러일으킨다는 취지로 작명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비람풍이
드라이한 문장은 물론 은유도 완벽히 이해한다는 점이다.
문장은 거의 교정을 보지 않아도 될 수준이고 기교도 부린다.
고유의 문체도 일정 수준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파람북 출판사는 서사 구조와 표현력 등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세계 최초의 본격 AI 소설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판사 측은 "이제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알려진 인공지능 소설은
하나같이 초단편에 불과했다"면서
"서사다운 서사를 갖춘 '진짜 소설'로서
세계 최초 AI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확인 여부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 소설은 AI가 사람처럼
소설 창작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이룬 것은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아직은 '대필 작가'에 가까운 수준이다.
김태연 감독이
주제와 소재, 배경과 캐릭터를 설정하고 스토리보드를 만들었으며,
도입부와 서문, 후기 등도 직접 썼다.
마치 영화감독과 같은 역할이다.
하지만 딥러닝을 통해 직접 문장을 써나간 것은 AI였다.
설계도에 따라 설정을 입력하면 비람풍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후문이다.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감독이 명령어를 다시 조정한다.
수학과 컴퓨터공학 전문가이면서 소설가인 김 감독은
지난 2014년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AI 소설의 '감'을 잡고
이듬해 AI 소설 스타트업 '다품다'를 출범했다.
그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진보한 형태의 AI 소설들이 잇달아 등장하리라 예측했다.
특히 '소설가'란 직업은 사라지는 대신
'소설감독'이란 직업으로 형태가 바뀔 것이라고 예언한다.
소설은 지체장애인 수학자부터 수학과 교수인 벤처 사업가,
정신과 의사, 천체물리학자와 스님까지 다섯 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시각에서 존재의 비밀을 탐구하는 이야기다.
소설 말미에는 AI 소설 창작의 모든 과정과 메커니즘을 설명한 '감독 후기'가 실렸다.
소설가 이문열은 추천사에서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가본 사람만이 창작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이러한 거대 담론과 정면 승부를 벌이기는 쉽지 않다.
큰 그림으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것도 미덕이다.
무수한 물음표를 던지는 우리 시대의 문제작임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출처: 연합뉴스, 송고시간2021-08-2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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