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의 스핀
1964년 벨(John Stewart Bell)이 제안한 실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먼저 입자의 스핀(spin)에 대해 가볍게 살펴보고 가자.
입자의 스핀이란 일종의 회전현상으로 야구공이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갈때 야구공의 자체 회전과 비슷한 현상이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적 입자의 스핀 현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물체의 회전과는 그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입자에는 고유한 스핀을 가지고 있는데, 쉬운 말로 풀어쓰면 입자에 주어진 회전 속도는 영원히 변치 않는 일정한 값을 가지고 있다. 또한 모든 입자들은 임의의 축에 대해 시계방향 또는 반시계방향으로만 회전하는 것을 관측할 수 있다.
위의 사실을 우리의 경험적인 사고 방식으로 이해하자면 난해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이해해보자.
입자의 스핀은 그것을 관측하기 전까지는 어떤 방향을 축으로 시계방향 혹은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입자의 회전속도는 고유한 값을 가지고 있는 상태이며, 우리가 어떤 방향에서 관측하는 순간, 입자는 그 방향을 축으로 시계방향 혹은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한 입자가 시계방향으로 회전할지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할지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입자의 스핀에 불확정성 원리를 적용하면 두 개 이상의 축에 대한 입자의 스핀은 동시에 명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자 이제 입자의 스핀에 대한 골치아픈 문제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벨이 제안한 실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EPR(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 이 세사람을 보통 이렇게 표현함)이 주장했던 바와 양자물리학자들이 주장했던 바를 이 스핀을 이용해 각자의 주장들을 다시 풀어보자.
양자적 불확정성에 의하면 입자의 스핀은 두 개 이상의 축에 대한 스핀을 동시에 결정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축에 대한 스핀'이라는 속성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결정할 수 없는 그 상태가 궁극의 실체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EPR의 주장대로라면 '모든 축에 대한 스핀'이라는 속성이 존재하는 것이며 관측자들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어떤 내재적으로 숨어 있는 메커니즘 혹은 프로그램에 의해 시계방향 또는 반시계방향의 회전을 관측자에게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자들은 입자의 스핀에 대한 속성은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으며, 어떤 하나의 축에 대한 스핀 정보는 확률로 존재하며, 누군가가 그 방향에서 관측하는 순간 하나의 명확한 스핀 값을 관측자에게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양자적 실체의 검증
벨의 제안이 있기 전까지는 과연 어느 누구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벨은 이러한 논쟁을 검증 가능한 문제로 바꾸어 놓았다.
위의 그림과 같은 상자들의 묶음 A, B가 있다고 하자. 모든 상자에는 a, b, c 세 개의 두껑이 있다. 상자 묶음 A, B는 아래의 특성을 가진 어떤 연결 고리가 있다고 한다.
1 각 상자의 두껑을 열면 구슬이 있는데, 이 구슬은 붉은색 또는 푸른색 빛 중 하나를 무작위로 선택하여 발한다.
2 어떤 두껑을 여느냐에 따라 구슬이 발하는 색은 달라진다.
3 하나의 두껑을 연 후에는 다른 두껑을 열었을 때 어떤 빛을 발할지 알아낼 방법은 전혀 없다.
4 A묶음에 속한 상자에서 특정 방향으로 두껑을 열었을때 발한 빛 색깔은
B묶음의 동일한 위치의 상자에서 그 방향으로 두껑을 열었을 때 발한 빛의 색은 언제나 동일하다.
4번에 대한 설명을 부가하자면, 만약 A묶음의 2번째 상자에서 a두껑을 열었을 때 나온 구슬에서 푸른색의 빛을 발했다면, B묶음의 2번째 상자에서 a두껑을 열었을 때 나온 구슬에서도 푸른색의 빛을 발한다.
자, 이 문제에 대해 양자역학자들과 EPR의 주장을 토대로 해석해보도록 하자.
양자역학자들은 상자 묶음 A, B에 있는 상자속의 구슬이 발하게 될 빛의 색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또한 이 두 묶음의 상자 A, B는 신비한 양자적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A의 첫번째 상자 a두껑을 열어서 나온 구슬이 푸른색 빛을 발하게 되면 이 영향이 B의 첫번째 상자 a두껑을 열게 되었을 때 나오는 구슬이 푸른색 빛을 발하게 하는데 즉각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EPR은 상자 묶음 A, B의 구슬이 발하게 될 빛의 색은 이미 결정된 상태이며, A의 첫번째 상자 a두껑을 열면 발하게 될 색이 이미 결정되어 있고, 마찬가지로 B 묶음의 상자 역시 A상자와 똑 같은 메커니즘으로 미리 프로그램 되어 있다 라고 주장한다.
양자역학자들이 옳은지 아니면 EPR이 옳은지 어떻게 검증가능할까?
자,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만약 EPR의 주장이 옳다고 가정하자. 상자의 두껑을 열었을 때 구슬이 발하는 빛의 색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가정하자는 이야기다.
각 상자의 두껑 a, b,c를 열 때 구슬이 발하는 빛의 색을 미리 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R을 붉은색, B를 푸른색이라고 하면,
(R, R, R), (R, R, B), (R, B, R), (B, R, R), (R, B, B), (B, R, B), (B, B, R), (B, B, B) 과 같이 8가지 방법으로 배치할 수 있다.
위에 서술한 경우의 수에서 각 두껑별로 모두다 동일한 색을 배치한 (R, R, R), (B, B, B)를 제외한다면 2가지 색 가운데 한 색은 1개의 두껑에 나머지 색은 2개의 두껑에 각각 배치된다.
여기서 a 두껑을 열면 붉은색, b두껑을 열면 붉은색, c두껑을 열면 푸른색이 구슬에서 발산하도록 미리 결정되었다고 하자. 즉 (R, R, B)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구슬의 빛이 위와 같이 발산하도록 미리 결정된 상자 두 개를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각각의 사람에게 무작위로 두껑을 골라 열었을 때 동일한 색을 보게 될 확률을 계산해보자. 이 두 사람이 두껑을 열 수 있는 방법의 수는 (a, a), (a, b), (a, c), (b, a), (b, b), (b, c), (c, a), (c, b), (c, c) 와 같이 9가지가 된다.
그런데, 두껑 a와 b를 열면 동일한 색의 구슬을 보게 될 것이고, 같은 두껑을 열더라도 동일한 색의 구슬을 보게 될 것이므로, 위의 경우에서 동일한 색의 구슬을 보게되는 경우는 (a, a), (b, b), (c, c), (a, b), (b, a) 와 같이 5가지가 된다.
즉, 구슬의 색이 미리 결정된 상태의 상자를 두 사람이 무작위로 두껑을 열었을 때 동일한 색을 바라보게 될 확률은 50%가 넘는다.
물론 모두 같은 색을 두껑별로 배정했을 때 동일한 색을 바라보게 될 확률은 100%이므로 위의 조건에 부합한다.
이것이 벨이 제안한 실험 방법의 아이디어였다. 물론 벨의 실험방법은 상자의 두껑을 열었을 때 구슬이 발하는 빛이 아니라, 두 입자의 스핀을 이용한 것이다.
위의 그림과 같이 양자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두 광자의 스핀을 3가지 방향에서 관측할 수 있도록 관측 축을 고정시킨다. 관측 방향은 무작위로 선택하며 각각 관측된 입자의 스핀 방향을 확인하고 관측 결과를 비교해본다. 관측 결과는 시계방향 혹은 반시계방향의 스핀일 것이다. 이와 같은 실험을 수없이 반복해보면 동일한 스핀을 관측하게 될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
만약 EPR의 주장대로 입자는 모든 축에 대한 스핀 속성을 가지며, 축의 방향에 따라 관측될 스핀의 방향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두 입자의 스핀을 임의의 축을 선택하여 관측했을 때 동일한 회전 성분을 가질 확률은 50%가 넘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가? 이는 위에서 서술한 구슬이 담긴 상자의 경우와 동일한 맥락이다.
하지만 벨이 실험을 제안했던 1964년에는 이러한 실험을 구현할 만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결과를 도출하지는 못하였다.
이 실험을 실제로 수행하게 된 것은 1970년대 초반이지만, 정밀한 실험이 행해진 때는 1980년대 알랭 아스펙(Alain Aspect)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서이다.
아스펙의 실험 내용은 두 대의 감지기를 13미터 거리로 두고 그 중간에 칼슘원자 상자로부터 광자를 발사하였다. 개개의 칼슘원자는 두 개의 광자를 양쪽 방향으로 방출하게 되는데, 이 때 두 대의 감지기의 세팅을 무작위로 바꿔서 광자의 스핀 값을 측정하였다.
실험 결과, 동일한 스핀값을 나타내는 경우는 정확히 50%였다.
이로써 영자적 연결 고리에 대한 EPR의 주장은 틀린 것 같다.
1997년에는 제네바 대학에서 두 감지기 사이의 거리를 11km나 떨어져있게 하고 실험을 하였으나 그 결과는 동일하였다.
EPR의 주장의 핵심은 서로 떨어진 물체는 각기 독립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한 물체의 특성은 공간적으로 떨어진 다른 물체의 특성에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스펙의 실험결과는 '여기에 있는 물체에게 어떤 짓을 하면 저기에 있는 물체는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이다.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두 개의 입자 A, B가 있다고 할 때, A, B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멀더라도 입자 A의 측정행위는 즉각적으로 입자 B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입자 B의 속성을 변화시켜 A가 측정 당했을 때 나타난 명확한 값을 B가 그대로 가져간다.
그렇다면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두 개의 입자는 서로가 정보 교환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예를 들면 한 입자가 사람에게 관측당했을 때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다른 입자에게 자기가 사람에 의해 관측당했으니 내가 사람들에게 명확한 값을 보여주는 그 값을 너도 보여주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일까?
만약 두 입자사이에 정보가 교환된다면 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위배된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어떠한 것도 빛보다 빠를 수는 없다고 하였다.
관측되기 전까지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던 입자가 관측되는 순간 명확한 값으로 나타날 때, 이 값은 곧바로 동일한 실체인 다른 입자의 속성이 명확한 값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두 입자의 즉각적 영향력 행사에 있어서 두 입자사이에 정보의 교환이 있는것인가?
만일 어떤 모종의 정보 교환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특수상대성 이론을 위배하게 된다.
물리학자들이 어떤 무엇인가가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추정될 때, 두 개체 사이에 정보를 교환하는지 안하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특수상대성 이론에 위배되는지 안되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아무런 정보 교환이 없이 이루어지는 영향력은 특수상대성 이론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실제적으로 아무런 모순을 일으키지 않았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두 입자의 거리가 1광년이라고 하자. 물리학자 A, B 두명은 1광년 떨어진 곳에서 이 입자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하자. A가 입자를 관측하여 명확한 값을 얻었을 때, 이는 1광년 떨어진 입자의 속성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여기까지는 두 입자사이에 어떤 정보가 오고간 것은 전혀 없다. 하지만, 두 입자가 과연 동일한 결과값을 가졌는지 비교하려면 1년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왜냐하면 A, B사이에 전파를 이용하여 서로간에 관측한 결과값을 비교하더라도 1년은 지나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정보교환이 있는 경우, 특수상대성 이론에 위배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정보교환이 있는지 없는지 서로간에 비교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공간에 대해 양자물리학적으로 간단히 살펴보았다. 고전적인 공간 개념은 국소적인 공간이었으나, 양자물리학에 의해 공간은 서로 얽혀 있으며 비국소적이라는 것을 보였다. 이는 물리학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결론 중에 하나이다.
공간의 기본적인 특성이 한 물체와 다른 물체를 구분해주는 것이라 여겼는데, 양자역학에서는 지구에 있는 한 입자와 저 멀리 안드로메다 은하에 있는 한 입자가 서로 밀접한 연관관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공간은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공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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