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과학분야 책을 읽었다.
양자 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결합한 양자중력 이론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카를로 로벨리의 <The Order of Time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양자중력 이론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기에 용기를 냈다. 솔직히 읽기 쉽지 않았지만, 이 책이 설명하는 그 개념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시간의 본질을 탐구한 로벨리는 “모든 장소의 시간은 다른 리듬과 속도를 갖는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나의 현재와 너의 현재는 똑같지 않다.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사물의 양과 특성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장소마다 다른 양자중력의 차이로 인해 이런 변화가 생겨난다.
사람들은 모든 장소에서 시간이 같은 리듬과 속도를 갖고, 과거에서 미래로 연속된 하나의 흐름을 타고 흘러가고 있다고 믿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시간은 하나의 방향, 하나의 흐름만을 갖지 않는다. 이 세계 안에는 다른 속도와 흐름이 존재하고,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수많은 시간이 존재한다. 달에서의 하루와 지구에서의 하루, 화성에서의 하루와 목성에서의 하루, 안드로메다 은하에서의 하루는 시간의 길이가 제각각인 이유이다. 양자역학의 장(場) 안에서 시간은 유일한 것이 아닐뿐더러 장소마다 다른 리듬을 갖는다. 언뜻 시간은 정연한 순서와 질서를 품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이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일 뿐 시간의 본질, 우주의 본질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시간 혹은 시공간은 아주 작은 알갱이(양자)로 전자와 같은 물리적 실체다. 그리고 시간이나 공간 및 이 둘이 직조된 시공간은 무언가와 상호작용, 혹은 관계하지 않으면 구체적인 물리적 실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즉, 시공간은 과정과 관계들의 망(nexus)이라는 의미이고, 시간은 관계성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흘러가 버리는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24시, 365일 한정된 시간 안에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늘 바쁘게 살아왔다. 24시간을 빠듯하게 살았는데도 뭐 하나 이룬 것이 없는 듯하여 허탈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은 결코 내 존재를 정의할 수 없고, 내게 주어진 시간들은 내가 정의해 갈 수 있다. 내가 겪게 되는 사건들과 모든 상황,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성 안에서 현명하고 아름답게 살아내는 것이 인생이고 나이 듦이다.
시공간의 발현 속에서 단순히 반응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닌, 끊임없이 생각하고 사유하며 혼자가 아닌 우리로 살아내는 삶. 이것이 시간의 의미이고 인생의 의미 같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과학책이 아닌 철학책 같다. 어렵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어이없게 어렵지만, 나한테 시간이 무슨 의미인가? 속절없이 쏜 화살 같이 흘러가는 세월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생각하면서 읽으니 소름 돋도록 동의가 되는 문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더라.
카를로 로벨리의 또 다른 책, Reality is not what it seems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라는 책도 용기를 내어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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