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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연인 조루주 상드②

by 靑野(청야) 2013. 6. 25.

쇼팽의 연인 조루주 상드②

 

▲     © 독서신문
‘조르주 상드’의 탄생

남편과 어린 자녀를 시골 저택에 남겨둔 채 집을 나온 상드는 파리로 가 졸르 상드를 찾아가 그와 함께 생활했다. 1832년 상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친구의 권유로 신문지상에 <엥디아나>란 소설을 연재하게 된다. 그 소설 <앵디아나>가 뜨는 바람에 상드도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 때 필명으로 연인의 이름 <졸르 상드>에서 따온 ‘조르주 상드’라는 남자 이름을 슬쩍 디밀었던 것이 우리가 아는 그녀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남편과 자식을 버린 그녀로선 파리의 생활을 위해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제약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터이다. 사뭇 중절모자에다 남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남자들과 대등하게 어울렸다.
 
그들과 함께 문학과 혁명을 논하면서 정열적으로 글을 썼다. 그리고 2년 동안 동거했던 졸르 상드와 헤어지게 된다. 그녀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그가 다른 여자를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이후 1833년 상드는 어느 만찬장에서 시인 뮈세(alfred de musset, 1810-1857)를 만난다. 그는 아직 23세의 어린 나이임에도 술과 도박, 그리고 여자를 탐닉하며 스스로 번민 속을 헤매고 다녔다. 그런 자신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했던 것일까. 대번 자신의 안식처로 6살 연상의 상드를 붙잡았다. 상드는 그를 거절했다. 그러나 그가 거듭해서 구래를 하자 그를 허락하고 말았다.
얼마 후 이미 병세가 깊었던 뮈세가 발작 증세를 보였다. 그 충격으로 인해 그녀는 우울증이 생겼다. 이를 벗어나 볼 심산으로 두 사람은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이탈리아 여행은 그녀에게 더 참담했다. 그녀는 여행에 앞서 선불로 받은 출판사의 돈을 갚기 위해 베네치아의 호텔에서 작품 집필에 여념이 없었는데 뮈세는 호텔 밖 도박장에서 시간과 돈을 다 허비했다. 그 때문에 그며는 뮈세를 심하게 나무랐고 그도 반성은커녕 마구 대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뮈세가 알콜중독과 정신이상으로 발작을 일으키고 드러눕자 그녀는 그를 정성껏 간호했다.
그러나 병이 더 깊어진 그는 그녀와 그를 치료하던 주치의와의 사이를 의심하며 느닷없이 달려들어 그녀의 목을 조르는 등, 그녀를 힘들게 하였다. 솔직히 공포와 피곤에 지친 그녀는 그 의사에게 심적으로 도움을 받고 의지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의사가 결코 의로운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런 그녀의 심릴글 이용해 슬슬 장난을 걸었다. 그러다 진짜 의식에서 깨어난 뮈세에게 들키고 말았다.
분을 못 이긴 뮈세는 혼자서 파리로 가버렸다. 상드와 그 의사의 데이트를 도와준 셈이다. 상드는 그 의사를 종종 만났다. 그러면서도 게속 뮈세의 안부가 궁금해 편지를 보냈다. 누나나 어머니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상드를 보러온 뮈세는 상드와 의사가 나란히 외출하는 것을 보게 되어 한바탕 싸웠지만 뮈세와의 끈끈한 정은 그 뒤 2년 동안 더 이어졌다고. 오히려 그 겁탈자인 의사가 먼저 바람처럼 떠났다.

쇼팽을 만나다

상드가 피아노의 詩人이라 일컬어지는 쇼팽(chopin, 1810-1849)과 처음으로 만난 것은 뮈세와도 결별한 이듬해였다. 고향 노앙의 영지로 돌아온 상드는 집을 살롱처럼 개방해 지인들을 초대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리스트가 쇼팽을 데리고 오겠다는 말을 듣고 상드는 근사한 피아노까지 갖춰 놓았다.
 
1838년 봄, 노앙의 영지는 평화롭고 격조가 있었다. 쇼팽이 피아노에 앉아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피아노곡 선율은 더 넓은 초원에 음악의 신이 내린 듯 했다. 그 피아노 치는 쇼팽의 모습을 본 상드의 가슴은 쿵쾅거렸지만 쇼팽은  첫인상이랄 수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는 일 자체가 싫었다.  남장, 거기다  직설적인 그녀의 기질만도 그에게는 질색할 일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상드는 쇼팽과 가깝게 지내고 싶다고 리스트에게 여러 번 부탁을 했단다. 더불어 그녀가 쇼팽을 자기의 별장으로 초대까지 했는데 쇼팽은 이마저도 거절했다.
 
그런 그녀에게 기회가 왔다. 쇼팽이 약혼자였던 마리아와 헤어져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즉시 상드는 파리로 달려가 그를 위로해 주었다. 지쳐있던 쇼팽은 어느 정도 그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특별히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렇듯, 36살의 상드는 6살이나 연하인 쇼팽을 보자마자 사랑하게 되었지만  실제 결핵으로 인한 쇼팽의 건강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쩔 수없이 상드는 그와 함께 지중해의 마조르카까지 요양차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쇼팽의 병세는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현지인들마저 전염병이라고 방을 비워줄 것을 요구해 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그런데도 쇼팽이 작곡한 대부분의 마주르카와 녹턴, 빗방울 전주곡 등이 이 때 완성되었다고 한다. 

마조르카 섬, 마르세유, 상드의 별장 노앙의 저택에서 그들은 약 10년 동안을 함께 살았다. 쇼팽은 상드의 조용한 별장을 참 좋아한 듯하다. 이 곳에 와서 비로소 쇼팽은 안정을 찾았고 이 곳 사람들도 안정된 모습의 쇼팽을 응원하기도 했다. 이에 고무된 쇼팽이 안정을 찾을 때면 상드를 <나의 주인>이라 부르며 찬양해마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딸 쏘랑주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했다. 

‘맑은 나의 음악은 그녀 덕분이며 내가 지치고 고독할 때 그녀의 눈길이, 그녀의 애무가, 그녀의 미소가 있다면 나는 그녀를 위해서만 살고 싶다’고도 했다. 이 무렵 상드도 쇼팽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부부로서의 성생활도 포기한, 늘 그를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따라서 쇼팽은 어머니 같은 여인 상드의 보살핌 덕분에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킬 수 있었지만 반대로 상드는 서서히 지쳐갔다. 자기도 모르는 상실감을 안고 쇼팽한테서 달아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냉혹한 이별을 선택한 데에는 딸의 배우자를 두고 쇼팽과 신경전을 벌인 것도 한몫 한 것 같다. 그래도 편지 한 통으로 이별을 고하다니 누구도 못믿을 것이 사랑이던가.

쇼팽을 곁에서 지켜본 상드는 그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가엾은 대 예술가는 사람들이 멀리하는 환자였다. 그는 완전히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는 각혈을 하며 자기의 환상에 불안하게 동요했으며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다. 정신이 들면 억지로 크게 웃어 제치고 작곡한 숭고함을 연주하였다. 그것은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고독과 애수와 공포에 사로잡혀 심장이 찢어질 듯한 생각으로 작곡한 것이었는데 때때로 미친 듯이 피아노를 쳐대는 것이었다.”

예컨대 촉수가 예민한 예술가의 사랑은 고통이다. 더구나 쇼팽은 누나와 여동생, 어머니 등 여자들 속에서 자라 여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에다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었으니 다소 억척스런 상드가 아니었으면 그 고독을 어찌 이길 수 있었으랴. 그러니 그의 고집스런 연주세계 또한 그녀로 인해 소통시키고 채워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쇼팽이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 상드를 그리워한 것은 어쩌면 둘의 사랑이 이토록 지독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     © 독서신문
 
조르주 상드의 만년

과연 쇼팽에게서 지쳐 떠난 상드는 어디에 머물렀는가. 따지고 보면 그녀의 매순간은 어떤 식으로든 다 사랑이었다. 결국 상처 받을 것을 알면서도 늘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던 그녀의 남성편력 역시 사랑에 대한 욕심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시대와 나이를 초월한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였으되 실제로 어떤 희생이 요구되는 모성애적인 사랑이 더 많지 않았던가. 

쇼팽과 이별한 그녀는 13살이나 연하인 <알렉상드르 망소>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마치 상드가 그동안 뿌린 사랑과 헌신의 보상이라도 받듯, 그는 상드의 마지막 연인으로서 그녀를 늘 기쁘게 했다. 아, 다정도 병이든가. 61살의 상드를 두고 48살 밖에 안된 망소가 먼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상드는 허무한 담배개비를 태우며  ‘사랑의 요정’ 등 뛰어난 작품을 몇 편 더 썼다. 그리고 망소가 죽은 11년 후에 그녀도 이 승을 떠나 망소 곁으로 갔다. 진정 그녀의 독자라면 책에 대한 관심만큼 저자에 대한 관심도 클 것이다. 160여 년 전 여류작가의 그 어떤 생각과 보헤미안적인 사랑에 대한 답도 그녀의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들었을 터, 직접 책방에 가서 그녀를 만나보고 싶은 그런 날이다

 

촐처: [독서신문] 글쓴이 신금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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